[스타트업 리포트] '통신업체 만든 20대 여성' 서지안 로미고 대표
"2030년까지 슈퍼앱 만들어 매출 1조 원 겨냥"
장관이나 대기업 출신 등 묵직한 경륜을 가진 인물들이 대표를 맡는 통신업계에 20대 여성 대표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지난해 말 신생기업(스타트업) 로미고를 창업한 서지안(25) 대표다. 국내 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최연소 대표이자 창업가다. 젊은 여성이 통신 서비스 업체를 창업하고 대표를 맡은 것 자체가 파격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디지털 기술과 남다른 젊은이의 패기다.
그는 요즘 해외여행의 필수품이 된 이심(eSIM) 서비스를 제공해 이용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심 서비스는 로밍이나 범용이용자식별모듈(USIM, 유심)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해외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로밍보다 저렴하고 유심보다 간편해 해외여행객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며 기존 통신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그는 직접 발로 뛰며 전 세계 100개 이상의 통신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200개 지역에서 이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직접 춤을 춘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해외 행사에 광고판을 지고 나가 이목을 끄는 등 기존 통신업체 대표들은 하기 힘든 기발한 마케팅을 펼쳤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서 대표를 만나 야심 찬 도전기를 들었다.
전 세계 200개국 이심 제공…외국인도 이용 가능
지난해 12월 설립된 로미고는 전 세계 200개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이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심은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 로밍이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해외에 나가 설정을 바꿔주면 스마트폰이 현지 휴대폰으로 바뀐다. 단점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심 설정이 힘들 수 있다. 또 예전 스마트폰은 이심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심 구입 전 갖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서 대표는 처음부터 전 세계를 겨냥한 이심 서비스를 구상했다. 창업하자마자 국내 개인 이용자를 위한 이심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난 4월 외국인여행객들을 위한 이심 서비스를 선보이며 서비스를 확장했다. "페이팔 등 해외 결제 서비스를 붙여 외국인도 한국에 오거나 다른 나라 여행 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외국인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3개국어를 지원하며 올해 안에 스페인어를 추가해 우리말까지 총 5개국어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 지난 2월부터 기업간거래(B2B) 서비스 '로미고 포 파트너스'도 시작했다. "B2B 서비스는 출장을 많이 가는 기업에 할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구독형 이심 서비스입니다. 로밍보다 70% 저렴해 비용 절감을 원하는 기업들을 겨냥했어요. 사명을 밝힐 수 없지만 대기업 스타트업 등 30개사와 계약했어요. 연말까지 100개사와 계약하는 것이 목표죠."
해외 140개 통신업체와 제휴
관건은 치열한 경쟁이다. 이심업체는 국내에만 수십 개다. 서 대표는 해외 통신업체와 직거래로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차별화했다. 그가 제휴를 맺은 해외 통신업체는 유럽의 오렌지, T모바일, 중국의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일본 KDDI, NTT도코모, 소프트뱅크 등 약 140개다. "해외업체들과 직거래로 경쟁업체 대비 서너 배 많은 상품을 갖추었고 가격도 최대 두 배 저렴해요. 덕분에 페로제도 같은 낯선 곳에서도 이심을 이용할 수 있죠."
어떻게 이렇게 많은 해외 통신업체와 제휴를 맺었을까. 여기에는 부친의 힘이 컸다. 그의 부친은 20년 된 통신 서비스 업체를 운영한다. 이 또한 그의 경쟁력이다. "해외 통신업체 중 일부를 직접 개척했고 나머지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어요. 아버지께서 국내 최초로 유심카드를 판매한 가장 오래된 유심카드 업체를 운영하세요. 아버지와 공식 계약을 맺고 해외 통신업체들과 공동 계약을 맺어 빠르게 제휴사를 늘렸죠."
해외 통신업체와 직거래는 데이터 속도 등 이심 품질과 직결된다. "국내의 많은 이심업체들이 해외 통신업체와 직거래가 어려워 중간 도매상 같은 업체들을 이용해요. 이렇게 되면 도매업체가 제공하는 통신망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에 데이터 이용속도가 떨어져요. 해외에서 이심을 이용할 때 스마트폰에 나타나는 현지 통신업체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죠."
도매업체를 거치면 고객 대응도 늦다.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끊기거나 접속이 잘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해도 바로 대응할 수 없어요. 도매업체를 통해 원인을 파악해 대응하려면 시간이 걸리죠."
서 대표는 해외 통신업체들과 긴급 연락망을 구축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국내에서 여행을 많이 가는 지역은 대부분 해외 통신업체와 긴급 연락망을 갖춰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해요."
가격과 상품 다양성이 경쟁력
그가 제공하는 이심 상품은 200가지가 넘는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올라온 이심업체 중 가장 많은 상품을 제공해요. 스리랑카 이심은 파는 곳이 거의 없어 항상 판매율 1위죠."
덕분에 상품 경쟁력이 세계 1위 이심업체인 미국 에어알로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많은 지역에서 무제한 데이터 상품과 속도가 빠른 5세대(G) 이동통신을 지원해요. 반면 에어알로는 무제한 데이터 상품이 없고 5G를 지원하지 않아 속도가 떨어져요."
또 많은 지역에서 해외에서 이용 가능한 현지 전화번호를 함께 제공한다. "현지 전화번호가 있어야 통화는 물론이고 식당이나 공연 예약, 택시 호출 등을 할 수 있어요. 유럽 전역과 북미, 태국, 몽골 등은 이심을 구입하면 현지 전화번호를 함께 제공해요. 경쟁업체 가운데 현지 전화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가 많아요."
해외 통신업체와 직거래로 가격도 낮췄다. "비용이 올라가는 도매업체를 거치지 않고 해외 통신업체와 직거래를 하면서 경쟁사들 대비 미국은 절반, 일본, 몽골, 대만, 베트남 지역은 25% 저렴하고 유럽은 2,000~3,000원 더 싸요. 유럽 지역은 연말까지 가격을 더 낮출 예정입니다."
젊음을 무기로 내세운 마케팅
그가 전 세계에 로미고를 알린 방법은 혀를 내두를 만큼 기발하며 열정적이다. "돈이 없어서 젊음을 무기로 활용했죠. 젊은 만큼 젊은 고객의 심리를 잘 알아요. 젊은 층들은 잘하는 것보다 재미를 더 추구해요. 그래서 딱딱하게 제품을 소개하는 대신 직접 막춤을 추며 재미있게 서비스를 알린 영상을 찍어 매주 한 편씩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어요. 지금까지 약 30편 영상을 올렸는데 해외에서도 많이 봐서 해외 전시회에 나가면 알아보는 외국인들이 많아요."
뿐만 아니라 직접 광고판을 만들어 등에 메고 서울 이태원과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 곳곳을 걸어다녔다. 심지어 경연 심사 때도 광고판을 메고 들어가 발표해 웃음을 터뜨렸다.
해외 통신업체와 계약하기 위해 직원을 쫓아가 기차를 따라 타기도 했다. "지난 5월 프랑스의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에 참가했다가 귀국 비행기를 취소하고 유럽 통신업체 직원의 기차를 따라 타고 가며 그 안에서 설명을 했어요."
비바테크 행사는 신청업체 중 심사를 통과한 곳만 참가할 수 있다. 올해 비바테크 행사에는 전 세계 이심업체 중 딱 두 곳만 심사를 통과했다. 세계 1위 에어알로와 로미고다. "신생기업이 세계 1위와 나란히 참가했으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이어 한국인 중 두 번째로 비바테크 뉴스룸이라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도 출연했어요."
트라우마 때문에 시작한 창업
연세대에서 의류환경학을 전공한 서 대표는 졸업을 앞둔 학생이다. 그가 창업을 한 계기는 작은 사고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태국에 창업 연수를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유심을 갈아 끼우다가 잃어버려 고생했요. 유심 교체 후 한국 휴대폰 번호가 바뀌어 인턴 면접 연락을 받지 못해 기회를 날린 적도 있죠. 그때 이후 유심을 대체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창업 아이디어를 준 것은 국내 이동통신업체다. "LG유플러스가 싱가포르에서 외국인들에게 이심 서비스를 알리는 행사를 했는데 거기서 영어로 상품을 소개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사람들을 설득해 상품을 파는 것이 재미있어 너무 열심히 팔아 직원들이 말릴 정도였죠. 뒤늦게 영업이 적성에 맞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심 사업을 구상했죠."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 흑자를 내고 있다.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용감했어요. 다행이 이심 이용자가 빠르게 늘며 영업이익률이 10% 이상이에요."
물불 가리지 않는 그의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그는 이심 설정이 필요 없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심 설정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최대 걸림돌이다. "스마트폰 설정을 대신하는 앱을 개발 중입니다. 앱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이심 설정이 자동으로 돼 편하죠."
앞으로 그의 목표는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키워 2030년까지 연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황당해 보일 수 있으나 그는 자신했다. "2030년 전 세계 스마트폰의 82%는 유심 카드 꽂는 곳이 사라지고 이심처럼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바뀌어요. 이미 최신 아이폰 중 일부는 유심 카드가 사라졌어요. 따라서 전 세계 로밍 시장의 1%만 차지해도 1조 원 매출이 나와요. 이를 토대로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여행 관련 슈퍼앱을 만들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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