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없는 들녘…여성농민 오랜 고충

이시내 기자 2024. 11.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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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른 밭에 화장실이 어딨나요? 저쪽 풀숲에다 해결해야죠."

경남 남해에서 마늘 등 밭작물 1만9834㎡(6000평)를 경작하는 구점숙씨(55)는 "젊은 귀농 여성 후배들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청년의 농촌 유입이 저조한 상황에서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 부재는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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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하루 6~10시간 농작업
건강권 보호 위해 대안 마련을
24일 수확작업이 한창인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고구마밭.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은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에 있다.

“이 너른 밭에 화장실이 어딨나요? 저쪽 풀숲에다 해결해야죠.”

최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고구마밭에서 수확에 한창이던 김영희씨(가명·75)는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허리 높이까지 오는 덤불을 가리켰다. 밖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허술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은 인근 마을회관에 있는데, 걸어가면 20분이 걸렸다.

김씨는 “왕복 40분을 들여 화장실을 다녀올 순 없으니 밭에서 작업할 땐 야외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성농민들이 주로 담당하는 밭농사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하루 6∼10시간을 들녘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화장실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고충이다. 그러나 농업 현장엔 간이 화장실이 설치된 곳이 드물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일, 최대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물을 마시지 않았다가 쓰러질 뻔했던 경험, 풀숲에서 볼일을 보다 뱀을 만나 혼비백산했던 사연 등을 털어놨다.

강원 인제에서 4만9586㎡(1만5000평) 규모로 산나물을 재배하는 송연옥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강원도연합회장(58)은 “요즘은 농촌에서도 드론 촬영을 많이 해 들판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찍힐까 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어르신들은 운전을 못하는 데다 무릎도 좋지 않아 참다가 방광염이나 요실금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젊은 여성농민들 사이에서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크다. ‘2023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업·농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 중 40대 이하 11%가 ‘들녘 화장실 부족 등 생리적 불편’을 1순위로 꼽았다.

경남 남해에서 마늘 등 밭작물 1만9834㎡(6000평)를 경작하는 구점숙씨(55)는 “젊은 귀농 여성 후배들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청년의 농촌 유입이 저조한 상황에서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 부재는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장실문제는 단순한 생활의 불편을 넘어 직업인으로서의 존엄과 인권·건강권을 위협하는 사항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촌 청년여성 생활실태’(2022년) 보고서는 “여성농의 건강문제가 주로 농작업성 질환 중심으로만 논의되면서 장시간 들녘 노동으로 화장실 이용이 제한돼 발생하는 질염, 생식기 주변 피부염, 방광염 등 문제가 비가시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회 사무처장은 “여성농민들은 도시권 여성보다 신장질환을 많이 앓는 경향이 있다”며 “건강권과도 직결되는 만큼 그동안 방치해온 문제를 들여다보고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들녘 간이 화장실 설치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원도는 2022년부터 화장실 구입비를 최대 270만원 지원하고 있다. 3개 농가 이상이 사용 가능한 지역이 대상이다. 사업 첫해 7곳, 올해는 91건이 신청됐다. 충남도도 올해 ‘친환경 화장실 설치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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