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불은 꼭 끄는 당신, 이미 기후위기 저항에 동참 중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27.8% 발전에서 발생
세계 재생에너지 30% 대비 한국은 9% 불과
플러그 뽑기·절전모드 등 전기 절약뿐 아니라
개인도 무탄소 '녹색전기' 선택해 쓸 수 있어야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제주는 올여름 폭염, 열대야, 고온 모든 기록을 다 경신했어요. 저는 오늘도 반팔을 입고 있고요.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것을 체감하고, 일상이 침범당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정부는 과연 어떤 상황 인식을 하고 있나 싶어지죠."
11월 첫날인 지난 1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제주도민 김경미씨의 말입니다. 경미씨는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탄소 배출이 적은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쓸 수 있게 해달라면서 올해 8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전기소비자 41명 중 한 명입니다. (관련 기사 : 채식에 텀블러 써도 전기는 화석연료... "녹색전기 쓸 자유 달라" 헌법소원)
그의 말처럼 기후위기 임계점이 이미 가까워졌다는 경고음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 통상 10월 초 눈이 내리지만 올해는 여태 첫눈 소식이 없는 일본 후지산, 1년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진 스페인 등 기상이변이 한 증거고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데이터도 증명하지요.
경미씨는 소비자기후행동·기후솔루션과 함께 '녹색전기 선택권 보장' 소송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많은 시민이 텀블러, 대중교통, 채식 등 여러 기후행동을 실천 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고 제도적 변화가 꼭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은 '그린에너지' 전환을 발 빠르게 주도해가고 있지만,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에 머물고 있거든요.
재생E 10%도 안 되는 한국은 '기후 후진국'
한국에서 전기 생산, 발전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탄소 배출원입니다. 올해 9월 발표된 2023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치에 따르면 총배출량 6억2,420만 톤 중 전환(전기·열 생산) 부문이 2억40만 톤으로 32%인데요. 한국에너지기술원에 따르면 전환 부문 내에서도 전기업 배출량이 86.9%로 대부분이라고 하니, 발전이 대략 총배출량의 27.8%를 차지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처럼 전기가 높은 배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9%대로 세계 주요국 평균인 30%(영국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보다 훨씬 낮고, 석탄(31.4%)과 LNG(26.8%) 등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60%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초래된 기후위기 시대 모든 자원이 그렇지만, 특히 '무탄소 전원'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는 전기를 적게 써야 탄소 배출도 적은 것이죠. 산업 발전과 함께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수십 년째 고공행진해왔습니다. 1981년만 해도 915킬로와트시(kWh)였지만, 2022년에는 1만652kWh로 10배 넘게 뛰었어요. 산업 부문 소비가 많은 게 주원인이기는 하지만, 한국 1인당 전기 소비량은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이에 정부도 '저탄소 생활 실천 방법'의 주요 사례로 절전하는 습관을 꼽고 있어요. 사실 머리로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죠. 빈방 불 끄기, 안 쓰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아두기, 대기전력 차단하는 멀티탭 사용하기, 백열등보다 수명도 8배 길고 전력소비도 적은 절전형 형광등 사용하기, 안 쓰는 컴퓨터 전원 끄거나 절전모드 설정하기, 엘리베이터 대신 짧은 거리는 계단 이용하기처럼요. 전기 절약을 하면 우리 집 전기료도 아끼지만, 지구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녹색전기 쓰고픈 시민들 선택권 보장하라"
다만 앞선 경미씨 말처럼 개개인의 생활 습관 변화만으로는 '1.5도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등 '무탄소 발전'으로의 구조적·제도적 전환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이유죠. 이에 환경단체들은 재생에너지 확충을 정부에 촉구하는 한편, 일반 시민들도 재생에너지를 선택해서 쓸 수 있는 길을 허용해 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확대돼야 발전 사업자들도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만들 테니까요.
'녹색전기 선택권 보장 확대' 헌법소원을 맡은 김건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주택용 전기를 소비하는 시민들은 현재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없고, 화석연료가 60%인 한전 전기를 일괄적으로 공급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필수재인 전기를 안 쓸 수는 없지만 사용 자체로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다시 기후변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라고 말했어요. 한전이 전기 생산·유통·판매를 독점하다시피 한 우리와 달리, 독일·영국·일본 등은 개인이 녹색전기만 선택해 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 있다고 해요.
전남 장성군에 거주하는 소비자기후행동 광주 대표 오인숙씨는 태양광 패널을 집에 직접 설치한 경우입니다. 지자체 보조금을 받고 추가로 사비 150만 원 정도 들여 설치했는데 전기료도 많이 절약된다고 해요. 과거 아파트에 살 때는 여름철 월 10만 원 정도 전기료가 나왔지만 올해는 4만 원 정도만 냈고, 지난달에는 4,000원이 나왔다고 해요.
인숙씨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고자 '녹색전기' 헌법소원에 참여했어요. 그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요인이 화석연료라는 것을 이제 모두 알지만 한 소비자, 한 개인으로서 다른 선택을 하기는 아직 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며 "저도 아파트 살 때는 주민 동의 절차 등 번거로움 때문에 태양광 이용을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고 했어요. 결국 "더 많은 시민이 재생에너지 문제에 대해 알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옥스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지구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 이하로 유지하려면, 전 세계인 1인당 연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3톤까지 낮춰야 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3.1톤이니 갈 길이 '아주 많이' 멉니다. 국내 배출의 4분의 1이나 차지하는 전력 생산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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