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의 연극 '햄릿' 3대 명장면 분석...그가 울 때 관객은 숨도 못 쉬었다

김소연 2024. 11. 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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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 데뷔 후 첫 연극 '햄릿' 열풍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섬세하고 꽉 찬 감정 연기"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제공

약 900석 규모 공연장의 한 달분 티켓이 예매 시작 5분 만에 매진된 것도, 추가로 풀린 시야제한석 티켓마저 2분 만에 다 팔린 것도, 이유는 하나였다. 조승우.

조승우가 배우로 데뷔한 지 24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그가 타이틀 롤을 맡은 예술의전당 기획 연극 '햄릿'(연출 신유청). 셰익스피어의 방대한 원전 대사를 충실히 살리면서도 대사를 구어체로 쉽게 풀어낸 연출 방식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지만, 그의 압도적 연기력엔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이 쏟아졌다. 시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해 지루할 수 있는 작품인데도 "185분의 공연 시간(인터미션 20분 포함)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반응이 많다.

조승우의 무엇이 관객을 홀린 걸까. 그가 빚어낸 '햄릿'의 차별점을 인상적인 극중 장면 3개를 통해 살펴봤다.


①캐릭터 장인이 짚은 '연극에 능통한 햄릿'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제공

"총리! 배우들을 부디 훌륭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배우들이란 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연대기와도 같은 존재니까."

덴마크 왕자 햄릿은 초청한 극단 배우들을 맞이하며 총리대신인 폴로니어스(김종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배우들은 '햄릿'의 극중극 '쥐덫'을 선보인다. 곤자고라는 영주의 동생이 곤자고를 죽이고 그의 아내까지 차지한다는 내용의 '곤자고의 살인'을 햄릿이 각색한 연극으로, 선왕(전국환)을 죽인 범인이 숙부 클로디어스(박성근)인지 떠보려는 목적이다.

이 극중극은 연극 톤과 일상적 대화 톤을 오가며 자유자재로 완급을 조절하는 조승우의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면이다.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말하던 햄릿은 "강렬한 피루스, 맹수 같은 피루스"라는 연극 발성 대사로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다 다정한 구어체로 바꿔 "다음에 꼭 다시 들려주게"라고 말한다.

캐릭터를 치열하게 연구하기로 유명한 조승우는 '우유부단한 인간의 전형'이라는 햄릿의 대표적 특징 외에 연극에 능통한 햄릿의 면모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햄릿은 연기를 지도하고 직접 각색도 하는 연출가이자 극작가였다. 폴로니어스를 향한 대사에서는 배우에 대한 철학도 엿보인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공연 시간이 185분이나 되는 것을 고민하면서도 이 장면의 대사를 전혀 줄일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햄릿은 "오직 눈빛만으로도, 짧은 대사 한 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수 있어. 진실성만 있다면! 이게 바로 연극이 가지고 있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힘이야!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거울로 비춰주는 일! 이게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일이야?"라고 말한다. 어떤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은 조승우가 '지금 왜 햄릿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말로도 들린다.


②햄릿은 어머니도 사랑했다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제공

"어머니... 잔인하게 들렸겠지만, 어머니를 사랑해서 한 말입니다."

햄릿이 왕비 거트루드의 내실로 찾아가는 1막 마지막 장면. 거트루드는 햄릿의 광기를 걱정하고 햄릿은 새 권력자인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를 비난하며 설전을 벌린다. 조승우의 해석은 여기서도 달랐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지배적 정서인 여타 공연과 달리 조승우가 주목한 햄릿의 감정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다.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던 햄릿은 거트루드의 두 발을 붙잡으며 "숙부의 침실로 가지 마세요. 엄마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에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에서도 애틋함이 묻어난다. 조승우와 거트루드 역의 정재은은 이 장면을 연습한 후엔 항상 휴식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로 극한의 감정을 쏟아내며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③침묵이 대사로… 오필리아의 장례식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제공

우연히 보게 된 누군가의 장례식. 햄릿은 그 주인공이 사랑하는 오필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오필리아에게서 돌려받은 편지를 죽은 오필리아 손에 쥐여 주고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

조승우는 움직임만으로 대사 없이 복잡한 심경을 객석까지 충실히 전한다. 일그러진 얼굴 표정, 오필리아에게 편지를 쥐여 주고 꽃을 올려 놓는 손끝의 동작에서 처절한 슬픔이 드러난다.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햄릿의 감정에 몰입한다. 클래식 음악회에서처럼, 장면이 전환되고 나야 객석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연극에서 보기 드문 진풍경이다. 공연평론가인 현수정 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는 "조승우의 햄릿은 드라마와 영화 연기에서 그가 보여줬던 것처럼 분노를 표현할 때 소리를 지르지 않고 오히려 침묵과 표정, 동작으로 꽉 찬 감정을 전한다"고 평했다. 오페라글라스를 준비하면 굵은 눈물을 떨구며 침묵으로 연기하는 조승우의 햄릿을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도전적 캐릭터를 좋아하는 배우, 조승우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제공

조승우는 도전하는 배우다. 지난해 오페라 요소가 많이 가미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도전했고, 이번에는 생애 첫 연극으로 전체 대사의 40% 가까이를 혼자 소화해야 하는 '햄릿'을 골랐다. 조승우는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손끝까지 연기한다는 평을 들었다. 현수정 교수는 "햄릿의 복잡한 심경 변화의 개연성을 느낄 수 있게 조승우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캐릭터를 잘 살렸다"며 "섬세하고 꽉 찬 조승우의 연기를 연극 무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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