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이런 라이벌은 없었다, 서로를 키워주는 두 사람
“내가 무대 못 서믄 너는 오히려 경쟁자 하나 더 치워 불고 좋은 거 아녀? 너 나 이겨 불고 싶어서 몸살 났잖어.”(김태리·윤정년 역)
“그래 이기고 싶어. 실력으로 맞붙어서 이길 거라고. 치사하게 수작부려서 이길 거면 진작 할 수 있었어. 내가 왜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는 건데. 난 네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이길 거야.”(신예은·허영서 역)
지난 3일 방송된 tvN 토일 드라마 ‘정년이’ 8회의 한 장면. 목포 출신 천재적인 소리꾼 주인공 윤정년이 경쟁자 허영서에 비해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독공(득음을 위해 토굴 또는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 훈련)을 하며 목은 물론 몸까지 혹사하자, 허영서가 찾아와 말리는 모습이다.
웹툰 원작인 드라마 ‘정년이’는 1950~60년대 여성 국극을 소재로 타고난 소리꾼 윤정년의 성장기를 그렸다. 당시를 실제로 겪은 어른들부터 웹툰에 익숙한 1020세대까지 3대가 함께 본다는 드라마.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완성도 높은 연출,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에 시청률은 1회 4.8%에서 시작해 6회 13.4%로 치솟았다.
◇서로 돕는 라이벌
그런데 이 드라마, 기존 우리가 익숙하던 드라마 작법과는 조금 다르다. “소리는 내 바닥이자 하늘이며 내 전부”라며 목소리 하나 믿고 국극에 도전한 타고난 천재 정년이와 재력·집안·미모·실력 모두 갖춘 준비된 소리꾼 영서의 경쟁 관계는 8회 대사처럼 다른 드라마와 이질적이다.
이른바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주인공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정적의 온갖 방해를 물리치며 고군분투하는 ‘캔디형’이거나, 천재지만 삐딱하거나 외골수인 성격 탓에 뒤늦게 주변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와 조직을 변화시키는 서사를 갖게 마련. 하지만 윤정년은 허영서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안간힘을 쓴다. 라이벌 허영서 역시 주인공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함께 발전하는 ‘선의의 경쟁’을 선보인다.
이런 이색적 경쟁 구도에 일본의 유명 순정만화 ‘유리가면’이 연상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본 만화가 미우치 스즈에가 1976년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연재되는 이 시리즈도 연극 ‘홍천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연기 천재인 주인공 마야와 모든 것을 갖춘 수재 아유미가 대결하는 구도다.
◇인기 비결 3대 요소
팬들과 제작진이 꼽은 인기 요소는 우선 드라마를 위해 소리를 직접 배운 배우들의 진정성. 김태리는 3년간 노래를 배웠고, 신예은 역시 1년 넘게 소리를 배우며 극을 익혔다. 초반 정년이를 미워했다가 믿고 따르는 박초록 역의 현승희(걸그룹 ‘오마이걸’ 승희)는 어린 시절 예능 ‘스타킹’에서 민요 신동으로 등장한 바 있다. 제작진은 “약간의 후보정을 했지만 배우들의 실제 노래 실력”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의 재발견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정은채는 여성 국극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뜻하는 ‘니마이’를 맡아 조어 ‘잘생쁨’(잘생김+예쁨)의 정석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OTT 드라마 ‘안나’ ‘파친코’ 등에서 다양한 연기 변신을 해왔지만, 이번 드라마를 통해 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신예은은 ‘춘향전’ 속 방자 역을 맡아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3화에 나오는 ‘춘향전’, 6화의 ‘자명고’ 등 드라마 속 국극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는 제작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화제를 낳았던 정지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의 감정선뿐만 아니라 탁월한 색감 등 미장센(시각 요소 배치)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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