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뒤틀리는 전쟁의 참혹함… “보면서 고통스러워야만 한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오늘 개봉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병원에 갇힌 기자에게 한 의사가 말한다. “전쟁은 엑스레이와 같아요. 인간의 내부가 전부 드러나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지고,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죠.” 이 영화도 엑스레이처럼 전쟁의 내부를 투시한다. 공포에 질려 크게 울지도 못하고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라며 울먹이는 아이의 눈빛엔 전쟁의 본질이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6일 개봉한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로 향한 AP 취재팀은 언론사 중 가장 늦게 도시를 빠져나왔다. 다큐멘터리는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 24일부터 취재팀이 마리우폴을 탈출한 3월 15일까지 20일을 기록했다. 민간인을 향한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을 고발한 공로로 AP 취재팀은 지난해 미국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았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등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이자 AP통신 영상 기자인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의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면서,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로 눈앞에서 목격한 참혹한 피해를 전한다. 피해자들의 긴장과 공포, 울분을 95분 동안 체험하게 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속이 뒤틀릴 정도로 고통스럽다. 수퍼마켓에 갔다가 폭격을 당해 핑크색 잠옷을 입고 병원에 실려온 6세 소녀,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 폭격으로 다리를 잃은 16세 소년 등 기사로만 접했던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체르노우는 “이건 보기 고통스럽다. 하지만 보기 고통스러워야만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기록하려는 기자의 사명감과 전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동시에 전해진다. “꺼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던 이들은 18개월 아이의 죽음 앞에선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흐느낀다. 심폐소생술을 하던 의사들도 울면서 “푸틴에게 이 아이를 보여 달라”고 분노한다. 취재진은 하드 드라이브를 자동차 좌석 아래와 생리대 등에 숨기고 러시아 검문소 15곳을 가까스로 통과해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내내 폭탄이 터지는 전쟁 영화와 달리 진짜 전쟁은 오히려 무섭도록 조용하다. 대피소가 되어버린 지하실과 헬스장도, 러시아군의 탱크로 포위된 병원도 숨 막히는 긴장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고 묻는 피해자들 앞에서 취재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게 된 체르노우 감독은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맞바꾸고 싶다”면서 “과거를 바꿀 순 없겠지만 우리는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 진실이 널리 퍼지게 하며, 마리우폴의 시민들이 잊히지 않게 할 순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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