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기이한 美 대선, 답은 정해졌다
1조대 후원금에 막말 판쳐 ‘어질’
누가 되든 ‘美 우선주의’ 뻔한데
尹정부의 가치외교 통할지 우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5일(현지시간)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던진 한 표는 이번에도 투표와 동시에 ‘사표(死票)’가 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국처럼 유권자 직접투표가 아닌 선거인단 투표로 선출되는 간접선거 방식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가 각 주에서 승리하는 정당이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각 주에서 패배한 정당 후보 지지자의 표는 사표가 된다. 한국에선 개표되는 유권자의 한 표가 대통령 당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공화당 트럼프 후보보다 287만표를 더 받았지만 경합주 패배로 과반인 270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한 트럼프 후보에게 패했다. 연방제인 미국만의 방식이지만 민의의 반영이라는 선거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선거 자금과 조달 방식 역시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쩐(錢)의 전쟁’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2022년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후보들은 선거 비용으로 1인당 최대 513억900만원을 쓸 수 있었다. 미국은 2010년 연방대법원의 후원금 상한선 폐지 판결로 쓸 수 있는 자금이 사실상 무제한이다. 민주당의 총 후원금 모금은 10억달러(약 1조3905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8억달러(약 1조1124억원)를 모금했다.
천문학적 자금이 선거에 사용되니 결국 각 캠프는 ‘큰손’인 고액 기부자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번 대선에서 등장한 대표적 큰손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힌 머스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경합주 보수층의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기 위해 헌법 1조(표현의 자유)와 2조(총기 소지 권리 보장)를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하는 주민 한 명을 매일 무작위로 선정해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선 금권선거, 정경유착 등이란 말이 나올 상황이지만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란 명목하에 이렇다할 제지를 받지 않고 있다.
선거판을 더 기이하게 만든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이다. 그는 이민자들을 겨냥해 “개·고양이를 먹는다”는 인종차별성 발언을 하고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선 “미치광이”란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입엔 ‘브레이크’가 없다. 그의 지지율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자본주의의 민낯과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 인권 침해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출됐다고 해도 변하진 않는 것은 미국의 대통령이 가진 영향력이다. 누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는 강화될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층을 위해서, 다음을 노리는 해리스 부통령은 지지세 확장을 위해 공화당 지지자들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 것이다.
문제는 결국 한국 정부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에선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 우선주의’란 결과는 정해져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막연한 가치 외교만 얘기하며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정부가 미국 새 정부의 ‘우선주의’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진다.
이귀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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