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對北 무인기, 전단 살포 자제하고 감시·정찰에만 사용하자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2024. 11. 6. 0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화전쟁 효과적 수단이지만
평양 심장부에 전단 살포하면
김정은 정권 공포심 자극하여
집단 발작·과잉 대응 촉발 우려
무력충돌까지 감수할 필요 없어
그보단 北 미사일 기지 감시·정찰
美위성 정보 공유 지렛대로 써야
북한이 평양에서 한국군에서 운용하는 드론과 동일 기종의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지난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국군부깡패들의 중대주권침해도발사건이 결정적 물증의 확보와 그에 대한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명백히 확증되였다"고 발표했다. 2024.10.19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최근 벌이고 있는 무인기 소동은 러시아 파병과 화성-19 신형 ICBM 발사의 여파에 밀려 잊히고 있으나 향후 대북 정책과 국가 안보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북한 외무성은 10월 11일 “대한민국 무인기가 3, 9, 10일 심야에 평양 상공에 침투하여 반공화국 정치 모략 선동 삐라를 살포했다”고 주장하면서 “계속되는 도발을 감행할 때에는 끔찍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13일에는 총참모부가 8개 포병 여단에 사격준비태세 지시를 내린 데 이어 김정은이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해당하는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북한이 한국의 책임을 입증한답시고 급조한 자료만으로는 누가 무인기를 보냈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북한 지도부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보인 거친 반응은 급소가 찔린 데 대한 비명이고, ‘제발 무인기까지 동원한 전단 살포만은 자제해달라’는 읍소에 가깝다.

북한은 무인기 자체보다 무인기가 살포하는 전단을 더 두려워할 것이다. 전단 속에는 김정은 체제의 존립 기반을 흔들 ‘불순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4년 전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한국 드라마 시청을 중형으로 다스리기 시작한 것도 청소년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남북 관계를 2국 체제로 전환하여 영구 분단을 정권 생존의 방패로 삼고 군사분계선에 높은 방벽을 쌓는다고 ‘반동사상문화’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북한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대북 정보·문화 전쟁의 수단으로서 무인기의 효용과 위력은 북한이 이번 소동을 통해 확인해 주었다. 그럼에도 전단 살포에 무인기를 활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소득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높다. 북한이 온갖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작년 10월 러시아에 대량의 포탄과 미사일을 수출한 이후에는 대남 관계에서 대체로 수세적·방어적 기조를 취하고 있고, 군사적 충돌을 피하려는 기색도 역력하다. 민간단체의 풍선을 이용한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오물 풍선으로 대응하는 행태도 유치하고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전단금지법 제정을 겁박하던 태도와 비교하면 온건해진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인기까지 동원하여 평양 심장부에 전단을 살포할 경우 김정은 정권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집단 발작과 과잉 대응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무인기가 전단 살포에 아무리 유용해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무력 충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강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둘째,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라는 대북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전단 살포보다 더 효과적인 대체 수단이 많다. 전단도 나름의 용도가 있지만 대북 방송의 파급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북한에도 TV와 라디오가 대중화되어 있고 휴대전화 보급률도 30%에 달하는 만큼 대북 정보 유입 수단도 정보화 시대에 맞게 고도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대북 위성TV 방송과 라디오 방송을 강화할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무인기는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 최선의 평시 용도는 대북 감시·정찰이다. 우리 군의 무인 정찰기가 모든 북한 미사일 기지와 발사장을 상시 감시할 수 있어야 북한의 핵 사용을 실효적으로 거부할 수 있고, 미국에 위성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요구할 레버리지가 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은밀히 무인기를 대남 정찰에 활용해왔다. 성주의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와 청와대를 정찰한 것이 확인된 지 10년이 넘었고, 2년 전에도 용산 비행금지구역까지 침투한 바 있다. 국내 일부 무인기 동호회도 10여 년 전부터 북한 지역을 촬영해왔고, 2년 전 북한 무인기 침투에 대응하여 우리 군 무인기도 평양 근처까지 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형 무인기를 감시·정찰에만 사용할 경우 북한이 이를 탐지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이 이에 대응하여 대남 무인기 정찰을 공공연히 하더라도 우리가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많다. 199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간에 체결된 ‘항공정찰자유화 조약’(The Open Skies Treaty)이 2021년 미국과 러시아가 탈퇴할 때까지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듯이 남북 간 상호 정찰도 군사 활동의 투명성 제고를 통해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무인기의 무장 금지와 공항 및 원전 주변의 비행금지구역 준수 등을 포함한 남북 간 양해는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