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억과 범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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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방송 앵커로 활동하던 2000년 초반 때 일이다.
수영복 차림의 모델 모습과 내 얼굴이 합성된 사진이 블로그를 떠돌아다니는 걸 발견했다.
플랫폼 기업과 블로그 주인에게 합성사진이니 지워달라고 쪽지와 이메일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예술적 표현이나 추억으로 다가올 이런 생성 사진이 내겐 마뜩잖은 웃지 못할 기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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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방송 앵커로 활동하던 2000년 초반 때 일이다. 수영복 차림의 모델 모습과 내 얼굴이 합성된 사진이 블로그를 떠돌아다니는 걸 발견했다. 플랫폼 기업과 블로그 주인에게 합성사진이니 지워달라고 쪽지와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보기 좋은 팔등신 원피스 수영복 사진이고 퇴폐적이지도 않고 나쁜 맘으로 올린 것도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 놀랐다. 내가 아닌 내 사진을 보며 부끄러움과 피해의식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요즘 단풍이 물든 도심의 공원과 가로수 아래를 걷다 보면 영화 ‘뉴욕의 가을’이 저절로 떠올라 자연스레 여러 상념에 잠긴다. 젊은 날 초상을 찾는 심정으로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리즈 시절부터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릴스로 모아 보여준다. 유명인은 물론 최근에는 자신의 사진을 딥페이크 앱에 업로드하고 원하는 키워드만 넣어도 레트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분한 사진을 제공하는데, 이를 자신의 SNS에 올리는 것이 한창 인기다. 누군가에겐 예술적 표현이나 추억으로 다가올 이런 생성 사진이 내겐 마뜩잖은 웃지 못할 기억이 됐다.
최근 법원은 명문대 동문 커뮤니티의 졸업사진과 SNS 사진을 사용해 2000개가 넘는 허위 영상물을 제작 배포한 범인에게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다. 인격 말살 문제를 해결하고 전파된 콘텐츠의 삭제는 끝이 없는 과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디지털성범죄안심센터에 불법합성물 삭제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가 지난달에만 1000여 명에 육박했다. 포털에 ‘딥페이크’라는 단어를 치면 수십 개 앱이 검색된다. 너무나 편리하고 간단한 구독 절차와 함께 사진과 비디오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한다. 인공지능(AI)과 딥러닝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성적 콘텐츠 제작에 악용되고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센터가 집계한 통계 중 주목할 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다수가 학생, 즉 10대라는 점이다. 10대는 피해자 36.6% 가해자 31.4%로 나타난다. 이는 다른 주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및 가해자로 20대가 가장 많은 것과 차이가 있다. ‘장난’이나 ‘놀이’로 인식하는 청소년에게 예방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도 최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제작 및 유포 범행뿐만 아니라 허위영상물 소지 및 구입, 시청한 자도 엄중하게 처벌됨을 인지시키는 것이 골자다. 피해자의 다수는 스토킹, 교제 폭력, 온라인그루밍 등 디지털 성범죄의 복합 피해를 겪고 있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은 잠재적 위험을 담보로 인간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를 사용하는 데 윤리적 잣대에 따라 추억과 범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늘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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