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를 마비시킨 정치권 [한국의 창(窓)]

2024. 11.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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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의 최고 성공작은 헌법재판소다.

헌재의 권한 중에서 권한쟁의를 제외한 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헌법소원 심판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 제113조). 그나마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헌재법 제23조 제1항)하는 규정에 대한 헌재의 가처분인용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선언되어, 헌법재판 자체의 올 스톱은 겨우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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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법 최고의 성공작 헌재
'사법의 정치화' 제물이 된 헌재
헌재소장 6년 임기 보장해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의 최고 성공작은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창립 당시의 기우를 뛰어넘어 나라의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민주화 과정에 있는 제3세계 국가에서 이상적 모델로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간 헌재는 대통령 노무현 탄핵기각, 대통령 박근혜 탄핵인용, 수도 서울 관습헌법, 통진당 위헌정당해산 등 국민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판례를 남겼다. 그런데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헌재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헌법에서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을 규정할 뿐, 헌재 소장에 대한 임기 규정이 없다 보니 혼돈 상황이 계속된다. 헌재 출범 후 4명의 소장은 6년 임기를 채웠다. 그런데 2013년 이후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재판관 잔여임기만 재임한다. 2명의 소장은 임기 1년도 채 못 남기고 임명되었다. 지난 11년간 소장 4명의 평균 재임기간이 2년 8개월에 불과하다. 게다가 소장 퇴임 후 6명이 권한대행을 수행하였으니, 11년간 10명의 소장이 재임한 셈이다. 이래서는 최고사법기관의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하다. 헌법기관장의 임기는 대법원장과 같이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헌법에 규정이 없다면 법률로 소장 임기 6년을 보장해야 한다.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취임할 때에도 임기 6년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재판관 구성도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헌법상 재판관은 국회·대법원장·대통령이 각기 3인의 지명·추천으로 임명된다. 헌재의 모델로 삼은 독일과 같이 의회에서 재판관을 선출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재판관 선출은 개헌사항이다. 국회 선출 재판관은 그간 여야 교섭단체 합의에 따라 지명하여왔다. 그런데 국회는 지난 10월 17일 임기가 만료된 3인의 후임 재판관 선출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헌법기관의 정상적인 작동이 멈춘 상태다. 헌재의 권한 중에서 권한쟁의를 제외한 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헌법소원 심판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 제113조). 그나마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헌재법 제23조 제1항)하는 규정에 대한 헌재의 가처분인용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선언되어, 헌법재판 자체의 올 스톱은 겨우 면하였다. 하지만 6인의 재판관이 정상적 심리와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6인 재판부로는 전원일치가 아니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1년 2개월간 재판관 궐위 상태가 장기화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논의되는 예비재판관제도는 적절하지 않다.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후임자가 취임할 때까지 현직 재판관이 계속 재임하도록 법률개정이 필요하다. 대법관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사건 적체로 고전하는 대법원도 대법관 임명이 여러 차례 늦춰져 재판부 구성이 지체된 바 있다. 최고위 사법관 임명의 지연으로 재판이 지연되면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 지체된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헌재의 정치적 평화기능은 때로 정치권 모두로부터 매도당하기도 하였다. 정치적 갈등을 헌재로 이관시켜 정치의 사법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정치권이다. 그나마 헌재가 사법의 정치화를 최대한 자제하여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헌재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누가 뭐래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데 있다. 하루속히 국회는 헌재 구성과 관련된 미비점을 보완하여 헌재를 정상화하여야 한다. 한국적 입헌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온 헌재가 더 이상 정치의 제물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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