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尹 조롱하는 ‘궁정 광대’ 명태균

이진영 논설위원 2024. 11. 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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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은 대통령 부부의 ‘궁정 광대’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조롱당하고도 쩔쩔매는 대통령 부부
대통령 권위 잃으면 뭘 할 수 있겠나
이진영 논설위원
제왕적 대통령의 측근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는 황태자(crown prince), 대통령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실세 측근들(acolytes),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깊은 가신 측근들(retainers), 그리고 궁정 광대(court clown)다.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국가정보원 차장, 주영 대사와 주일 대사를 두루 역임한 정치학자 라종일 박사가 왕정 시대 용어로 소개한 유형화다. 현실에서는 한 인물이 두 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는 김건희 여사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찐윤’이 실세 측근, 공식 직함 없이 대통령 부부와 사적 인연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가신 측근들이다. 현대인들에겐 생소한 유형이 궁정 광대인데, 올 9월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갑자기 등장해 연일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내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궁정 광대에 가깝다.

궁정 광대는 남다른 재주와 친화력으로 왕의 압박감을 덜어주고 말 못할 고민을 들어주는 인물이다. 점잖고 잃을 것 많은 권세가들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막말로 왕이든 누구든 금기 없이 조롱하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희곡에는 광대가 자주 등장한다. ‘리어왕’의 광대는 가짜 효심을 내세운 딸들에게 속아 나라 땅을 나눠주고 버림받은 리어왕에게 “지혜로운 자가 멍청이가 되어 하는 짓이 숙맥 같구나” 한다.

명태균과 그의 측근이었던 인물이 폭로하는 용산 이야기를 한 편의 희곡이라 생각하면 명태균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그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김 여사가 ‘어젯밤 꿈에 남편이 젊은 여자와 어딜 떠나는’ 같은 민망한 이야기도 털어놓는 상대였다. 대통령은 ‘장님 무사’, 김 여사는 ‘앉은뱅이 주술사’라 했고, 대통령에게 5년을 버틸 내공이 없으니 ‘젖은 연탄’ 보수의 ‘번개탄’ 역할만 2년 하고 내려오라 했단다.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하고 김 여사 흉내도 냈다. 대통령 탓에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총선 백서에 감히 ‘대통령 탓’이라 쓰지 못하는 여당이다. 금기를 깨고 무례를 범하는 건 광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광대가 광대만의 특권을 누리는 이유는 그가 국정에 힘이 되는 존재여서다. 외로운 왕에게 위안을 주고, 때론 직언으로 세상 이치와 민심도 전한다. 왕은 속으로 뜨끔 하면서도 “고놈 입버릇 참 고약하구나” 하고 만다. 어차피 광대가 하는 말이다.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권력 중심부에서 특유의 흰소리로 긴장을 해소하거나, 권력에 대한 조롱과 풍자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흉흉한 민심이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압력을 빼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명태균의 광대 짓은 불길하다. 그를 매개로 대통령 부부가 공천에 개입했다거나 공천 거래를 했다는 법적인 의혹 탓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광대의 무례를 대범하게 웃어 넘기지 못하고 그의 조롱에 쩔쩔매는 듯하다. 명태균의 존재가 알려지자 대통령실은 “명 씨와 2번 만났다”고 했는데 곧 여러 번 만난 사실이 들통났다. “당내 경선 막바지 이후 관계를 끊었다” 했으나 취임식 전날 통화하는 대통령 육성이 나왔다. 김 여사와의 카카오톡 문자 대화에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가 공개된 후론 대통령과 무관한 ‘배 나온 오빠’란 표현에 당내에서 발작적으로 정색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광대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도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광대의 말은 누구도 곧이듣지 않기 때문이다. 광대가 내로라하는 책사들을 제치고 “이 정권 창출엔 내가 일등공신”이라 하면 누가 믿겠나. 그런데 명태균은 어떤가. 그가 ‘꿈자리가 사납다’고 해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출국 일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통령 부부를 앉혀 놓고 초대 총리로 아무개를 임명하라고 했단다. 이런 황당한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정권이 위기라는 뜻 아닌가.

대통령실은 명태균 의혹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했다. 법적 책임보다 더 심각한 건 명태균 의혹이 용산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의 ‘사기-골계열전’에는 세 가지 리더십 유형이 나온다. 유능해 속일 수 없는(不能欺) 지장(智將), 존경스러워 차마 속일 수 없는(不忍欺) 덕장(德將), 감히 속일 엄두를 못 내게 하는(不敢欺) 용장(勇將)이다. 유능하지도 않고, 존경받지도 못하면서, 위엄도 없다면 무엇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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