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조은아]“‘팽오쇼콜라’ 못 먹을 판”… 초콜릿값 급등에 지갑 닫는 파리지앵

조은아 파리 특파원 2024. 11. 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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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초콜릿 박람회를 가다
초콜릿 원료 코코아값 연일 상승세… 세계 3위 소비국 佛도 소비 머뭇
일부 업체, 저렴한 ‘냉동 초콜릿빵’ 판매… ‘설탕세’ 도입 우려로 어려움 가중
젊은 상인들 ‘고급화’로 위기 돌파… “당 낮춘 초콜릿 선보일 것”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초콜릿 박람회 ‘살롱 뒤 쇼콜라’에서 시식을 하려는 관람객들이 초콜릿 상인에게 모여들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코코아 가격이 최근에만 10∼15% 올랐어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초콜릿 박람회 ‘살롱 뒤 쇼콜라’에서 만난 초콜릿 판매업자 아산 이슈앙 씨의 말이다. 초콜릿의 핵심 원료 코코아 값이 급등해 제조비 부담이 상당하다고 했다. BFM TV에 따르면 코코아 값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 사이에 130% 급등했다.》

프랑스와 모로코 등에서 초콜릿을 파는 그는 이날 초콜릿으로 만든 에펠탑 모형을 선보였다. 비싼 가격에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를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같은 달 29일 개막한 이 박람회에서는 이슈앙 씨를 포함해 40여 개국에서 온 장인들이 다양한 초콜릿을 내놓고 고객을 맞았다. 다만 비싼 가격 때문인지 소비자들은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 업체별 부스를 돌아다니며 무료로 제공되는 초콜릿 조각만 시식하는 분위기였다.

초콜릿을 맛보던 시민 델핀 그로이자르 씨는 “초콜릿이 비싸긴 비싸다”며 “그렇다고 저렴한 제품을 사면 품질이 안 좋을 수 있으니 이곳에서 좋은 초콜릿을 골라 즐겨야 한다”고 했다.

● 코코아 값 급등 고착화

이번 박람회는 다양한 시식회, 초콜릿 레시피 강연, 초콜릿으로 만든 14벌의 드레스 패션쇼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이달 3일까지 진행된 박람회 기간에 최소 9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됐다.

등장한 제품 또한 단순한 사각 초콜릿부터 대표적인 가을 간식인 밤, 딸기, 달걀 등을 표현한 제품까지 다양했다. 여성용 하이힐은 물론이고 볼트와 도끼 등 각종 공구까지 초콜릿으로 만들어 실력을 뽐내는 장인도 있었다.

이런 박람회가 개최된 이유는 프랑스인의 초콜릿 사랑이 유난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월드포퓰레이션리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프랑스의 연간 초콜릿 소비량은 22만2822t이다. 미국(38만7216t), 영국(31만5228t)에 이어 세계 3위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 소비자들은 초콜릿을 고르는 데도 신중하고 깐깐했다. 이날 박람회에서도 초콜릿을 시식할 때 맛을 보기 전에 먼저 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보고 향까지 확인하는 사람이 많았다.

최근 코코아 값 급등으로 초콜릿 가격이 비싸지면서 소비자들은 더 깐깐해지고 있다. 많은 박람회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것과 달리 이번 박람회에서는 대부분의 초콜릿이 정가로 판매됐다. 초콜릿 5, 6개가 든 작은 상자 한 개가 대부분 20유로(약 3만 원) 이상이었다.

이 같은 초콜릿 가격 상승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소비자단체 ‘UFC크슈아지르’가 80개의 초콜릿 상품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가격 상승률이 5%였다.

이는 대표적 코코아 생산국인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가나의 코코아 수확량이 적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폭염과 폭우 등 기후변화로 세계 코코아의 4분의 3을 생산하는 서아프리카 국가의 수확이 급감하고 있다.

산업화 정도가 낮은 코코아 농업의 구조적 문제도 한몫했다. 최근 미국 JP모건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코아는 여전히 소규모 농부들이 주로 재배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생계를 유지할 수준의 소득을 창출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농지에 재투자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다.

트레이시 앨런 JP모건 농산물 전략가는 “코코아 재배자가 가져가는 수익 비중이 매우 적어 재식(栽植) 비율이 매우 낮고 코코아 나무 또한 노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팽오쇼콜라 사재기 우려

코코아 값 급등은 프랑스 제과업계의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빵 가운데 다크 초콜릿이 들어간 전통 빵 ‘팽오쇼콜라’의 품귀 현상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빵집 전국 연맹 회장인 도미니크 앙락 씨는 BFM TV에 “이런 초콜릿 수급난을 경험한 적이 없다”며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팽오쇼콜라) 사재기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초콜릿 부족으로 팽오쇼콜라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저렴한 냉동 제품을 사서 팽오쇼콜라를 만드는 가게도 있다. 코르시카섬 빵집에서 일하는 크리스토프 에르비 씨는 BFM TV에 “가격이 계속 오르면 팽오쇼콜라는 고급 제품이 될 것”이라며 냉동 제품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제매체 카피탈에 따르면 프랑스와 식문화가 비슷한 벨기에 브뤼셀의 초콜릿 장인 로랑 제르포 씨 또한 “초콜릿이 ‘사치품’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초콜릿 상인들은 ‘설탕세’ 신설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 의회는 설탕이 첨가된 가공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년도 사회보장재정법안(PLFSS) 개정안을 발의했다. 설탕 가공제품 소비를 줄여 당뇨병 등 관련 질병 위험을 낮추자는 취지다.

준비에브 다리외세크 보건장관은 현지 매체 르텔레그람 인터뷰에서 “초콜릿 장인과 디저트 제빵사들을 처벌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라면서도 “(이 법을 통해) 약 50억 유로(약 7조4800억 원)에 달하는 건강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개정안을 지지했다. 초콜릿 업계는 법이 통과되면 초콜릿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코코아 값 상승에 이은 경영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한다.

● 고급화로 승부

명품화를 꾀한 초콜릿 전문점 ‘윌리앙 아르티그’의 매장 내부.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윌리앙 아르티그 제공
각종 악재를 맞은 초콜릿 업계는 돌파구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젊은 초콜릿 장인(쇼콜라티에)들은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20, 30대 청년층이 자주 찾는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근처에 지난해 말 매장을 연 윌리앙 아르티그 씨는 매장의 고급화에 신경을 썼다. 이날 방문한 그의 매장은 내부와 제품 전시 가구가 모두 베이지 색이었다. 초콜릿 상자, 전시 방식 등이 마치 고급 백화점의 보석 매장처럼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아르티그 씨는 “디자인을 단순화해 고객들이 초콜릿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박람회에서 만난 또 다른 상점 ‘베르트랑 쇼콜라티에’는 다양한 색채가 입혀진 구슬 모양의 초콜릿을 선보였다. 남편과 이 상점을 운영 중인 에밀리 베르트랑 씨는 “남편이 독학으로 연구해 다양한 색과 맛을 입힌 초콜릿을 발명했다”며 새로운 제품 개발에 쏟은 노력을 강조했다.

일부 장인은 초콜릿은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당을 낮추는 방법 또한 고민한다. 박람회 곳곳에도 ‘설탕을 쓰지 않았다’는 간판을 내건 상인이 많았다.

초콜릿 업체 ‘이가’에서 일하는 도리앙 투도 씨는 “사과와 포도에서 추출한 자연 당을 써서 초콜릿의 당 지수를 낮추고 있다”며 “당뇨병 환자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려 한다”고 밝혔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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