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제주도라 불리는 영도, 영험하다는 할매신[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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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는 작은 제주도라 불린다.
섬 노인들은 봉래산 정상에 할매신이 있어 섬 주민의 안위를 관장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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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도는 목마장이었다. 육지로 말을 보내는 통로인 서문으로 말을 끌고 나가면 멀쩡하던 말이 병들어 죽었다. 골머리를 앓던 부산진 첨사 정발 장군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정벌했는데 탐라국 여왕이 장군을 흠모했다. 탐라를 떠난 최영 장군이 신돈의 모함으로 영도에 유배됐다는 소식을 여왕이 접한다. 장군을 만나기 위해 영도에 도착했으나, 헛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왕은 장군을 그리워하다가 고독하게 죽는다. 원혼이 된 여왕은 정발 장군 꿈에 나타나 사당을 지어 위로해 달라고 한다. 정발 장군은 꿈 이야기를 조정에 전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이 명을 받아 산제당과 아씨당을 건립했다. 이후로 군마가 죽는 일이 없었다.” 여느 전설이 그렇듯 역사적인 인물에 설화적 상상력을 빚어 만든 허구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제주도민의 영도 이주사에 관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어 흥미롭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영도에만 제주도민회관 건물과 제주은행이 있다. 영도에서 제주민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녀문화전시관이 영도에 건립됐는데 제주 이외 지역에 해녀 관련 전시관이 만들어진 첫 사례다. 현재 육지 해안에는 제주도보다 많은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는데 그 시발점이 영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주도와 영도는 특별한 관계에 있다. 1934년 영도대교 개통식에서 부산 학생을 대표하는 기수가 제주 출신이었다. 영도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노인들의 자랑거리로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한때 섬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제주인일 정도로 영도는 작은 제주도였다.
아씨당 전설이 흥미로운 건 제주도민의 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이 건립될 때부터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제주민이 많이 찾는 곳이기에 후대에 각색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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