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정, ‘유령의 시간’ 개정 출간 부친 매듭짓지 못한 자서전 소설로… 분단 비극의 상처 작품 속에 녹여내 초판엔 월북 등 행적 모호하게 썼지만 신뢰 잃지 않던 ‘이섭’의 면모 부각
내가 이 소설을 쓰려고 작가가 됐는데. 선뜻 쓰지 못하고 계속 미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파산했다. 살던 집은 물론 자동차까지,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야 했다. 결혼 초 아이를 낳고 느꼈던 ‘내 인생이 끝났다’는 위기감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절박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것을 못 쓰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등단 이후 소설가 김이정은 개인의 상처에 집중해왔다. 그때그때 절실했지만, 아버지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설에 자신감도 붙고 세상을 보는 눈도 좀 깊어지면 쓰려고 미루고 있었다. 정말 잘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1975년 광복절 날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다 불러서 자서전의 시작을 보여줬다. 문청기질이 있는 아버지는 쓰는 것을 좋아했다. 노트에 만년필로 에세이와 일기를 비롯해 시도 쓰셨는데, 심지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이야기도 썼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아버지는 한 달 열흘 남짓 자서전을 쓰다가 쓰러지셨다. 그해 장례식에서 친척과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무슨 법이 발령돼 가지고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셨다고 하드라고.”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드물게 아버지를 좋아하는 딸이던 김이정이 쓰다만 자서전을 읽어보니 아버지의 청년기 초입까지 쓰여 있었다. 누런 원고지에 쓴 자서전은 22장 분량. 또 다른 노트를 살펴보니 사회안전법 전문을 오려서 색연필로 밑줄을 그은 게 보였다. 아, 이게 원인이었겠구나. 손녀딸처럼 예뻐하던 막냇동생이 죽은 것도 충격이 컸을 것이고.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오빠는 동생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자서전을 완성하겠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생 김이정은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아버지의 자서전을 내가 완성하게 되지 않을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던 그는, 쓰다만 아버지의 자서전을 보며 저 글을 내가 완성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이 파산한 2008년 가을, 김이정은 매일 도서관을 나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미루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점차 속도가 붙어 넉 달 만에 초고를 썼다. 이후에도 한참 원고를 더 들고 있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붙이기도 했다. 여러 차례 퇴고를 반복한 끝에 2015년 ‘유령의 시간’을 발표했다. 쓰고 싶다고, 아니 쓰게 될 것이라고 예감한 지 40년 만이었다.
김이정 작가가 최근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 존엄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의 개정판(교유서가)을 냈다. 초판 출간 후 9년 만이다.
이섭은 숙부의 영향으로 사회주의를 내건 북한으로 갔다가 피폐한 현실을 목도하고 다시 남으로 내려오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그를 쫓아서 북으로 가면서 가족의 행로는 엇갈린다. 이후 남쪽에서 재혼해 4남매를 낳도록 전 부인을 호적에서 지우지 못하고 그리움을 속으로만 삭인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신념과 열정에 보기 좋게 배반당한 후, 이섭은 적어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다시 이룬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서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걸었다. 그러나 길은 느닷없이 끊기고 사라져버렸다. 이섭은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알 수 없었다. 억지로 버티고 있던 마음의 철심이 툭,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그는 연좌제는 물론이고 ‘사상범을 재판 없이 재수감할 수 있다’는 사회안전법의 올가미에 들씌워진 채 조금씩 숨통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해방 30주년을 맞아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지형은 성장하면서 사회에 눈을 떠간다. 아버지의 가족사 비밀을 알게 된 지형은 아버지가 떠난 지 40년 뒤 아버지가 쓰다만 자서전을 매듭짓는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북의 이복 오빠를 만날 기대를 품고 평양에 와서 편지를 쓰는데.
김이정은 왜 아버지의 삶이 담긴 소설 ‘유령의 시간’을 써야 했을까. 이섭이 경험한 유령의 시간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김 작가를 지난달 6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무실에서 만났다.
―집필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아버지가 자서전을 다 쓰지 못하고 돌아가시면서 행적을 구체적으로 몰라서 힘들었다. 월북했다가 다시 왔다는 정도만 알았지,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감옥에 다녀왔는지 등 구체적으로 몰랐다. 안타까웠던 것은, 1975년이라는 상황이 굉장히 엄혹해 아버지가 친한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행적을 이야기하지 않으셨더라. 어머니조차 잘 몰랐다. 국가기록원이나 재판 기록을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행적을 몰라서 막막했고 망설임의 시간이 길었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기본 서사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우선 모호하게 썼던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쓴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북에서 혁명열사로 돼 있는데, 초판에선 혹시 아버지를 알게 될까 봐 고향 안동을 비롯해 구체적 정보를 감추었는데 이번에는 적었다. 또 초판에선 현대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그럼에도 인간을 대한 신뢰와 애정에 잃지 않던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좀 더 드러나도록 했다.”
―최근 남북 관계가 다시 대결과 반목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데.
“지금의 모습은 소설 속 상황보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다시 대립과 반목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 소설은 1970년대가 배경인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이 견고한 남북 분단의 장벽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기분으로 책을 펴낸 것 같다. 이 소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길 바랐지만, 최근 이 소설이 다시 필요해진 상황에 화도 나고 참담하기도 하다.”
1960년 안동에서 태어난 김이정은 1994년 단편소설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가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유령의 시간’ 등을, 소설집 ‘도둑게’, ‘그 남자의 방’, ‘네 눈물을 믿지 마’ 등을 발표했다.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떤가.
“자서전과 딸을 위한 여행기 ‘만유록’을 쓰기도 한, 이른바 ‘이르쿠츠크파’로 불리는 초기 공산당 운동을 펼친 김응섭과, 일제 덴노가 사는 곳에 폭탄을 던졌던 의열단 김지섭과,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낸 김재봉 등 좌파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을 쓰려고 한다. 숙제를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새 숙제가 갑자기 나타났다(웃음).”
평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고 했다. 새벽 두 시쯤 잠을 자고, 다음날 오전 열 시 반쯤 일어나며, 약간의 스트레칭을 한 뒤 낮 열두 시에서 오후 한 시 사이에 밥을 먹고, 오후 서너 시쯤 도서관을 간다. 창작실이나 레지던스에 들어갈 때도 있고. 밤 열 시쯤 도서관에서 귀가하고, 어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다가, 다시 어둠의 보금자리로. 꿈나라에선 가끔씩 공원을 산책할 것이고, 여행도 자주 갈 것이며, 아주 가끔은 그리운 이에게 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