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성 바꾸는 것 강요하는 일본

기자 2024. 11. 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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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결혼 후 성(姓)을 바꿀 것을 강제하는 세계 유일의 부부동성(夫婦同姓)제도가 있다. 여성차별을 상징하는 제도 중 하나다.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일본에는 자신의 성(姓)을 바꾸는 것을 거부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1일, 사실혼 상태인 30대 부부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구두변론이 열렸다. 부부는 변론에서 “현행 혼인제도는 한쪽이 자신의 성을 바꿀지 결혼을 포기할지를 강요하는 매우 잔혹한 제도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2번의 집단소송이 있었지만, 최고재판소(대법원)는 현행 제도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재도 5쌍의 부부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 개정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부부동성제도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여성이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부부동성을 규정한 민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이 4번째 권고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따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일본 정부 통계를 보면, 결혼 후 남성의 성을 따르는 여성이 95%에 달한다. 심사에 참여한 한 위원은 “여성이 성을 바꾸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임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6월에는 예상 밖의 움직임도 있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선택적인 부부별성(夫婦別姓)의 조기 실현을 요구하는 제안’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다. 게이단렌은 부부동성 유지를 강하게 주장해온 자민당의 유력한 지지 단체다. 다양성의 존중을 요구하는 세계적 흐름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국민의 의견이 분분하고, 가족의 존재 방식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의 폭넓은 이해를 얻을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부동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가족제도가 붕괴하고 전통이 무너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여론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선택적인 부부별성’에 찬성하는 여론은 70%에 달한다. 자민당을 제외한 주요 정당도 ‘선택적 부부별성’의 도입에 긍정적이다. 법 개정에 반대해온 자민당이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좋은 기회가 왔다.

부부동성제도 폐지는 남녀평등을 위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부당한 선택을 강요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부부동성제도는 여성차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과도 연결된다. 일본 사회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낼까? 세상에는 ‘부부별성’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경험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사회에 꼭 전해주고 싶다.

박진환 일본 방송PD

박진환 일본 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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