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드롬’ 동네책방엔 ‘남의 집 잔치’…“대형서점 독점 구조가 문제”[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출판평론가다. 1994년 출판계에 입문해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기획회의’를 비롯한 여러 출판 관련 잡지를 만들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출판과 책에 관해 목소리를 내왔다. 2020년 출간한 <동네책방 생존탐구>는 전국의 동네책방 취재를 바탕으로 책방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뤘다.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번역·출간됐다. 올해 펴낸 <유럽 책방 문화 탐구>는 속편 격에 해당한다. 어린이책 전문가로 활동하며 학부모, 사서, 교사 대상 독서 교육도 하고 있다.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아홉 살 독서 수업> <아이를 읽는다는 것> 등을 썼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뒤 대형 서점들에선 난리가 났다. ‘서점 오픈런’이란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발표 엿새 만에 한강 작가의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지역·동네 책방은 ‘한강 신드롬’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형·온라인 서점들과 달리 책을 구하지 못해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정작 한강 작가가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뉴스가 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지역서점과 동네책방은 이 잔치에서 왜 소외된 걸까. 2020년 출간된 <동네책방 생존 탐구>에서 ‘동네책방, 오늘도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었던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를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대전의 향토 서점 계룡문고처럼 큰 지역서점도 적자에 시달려 문을 닫는 나라에서 ‘한강 열풍’이 반짝 이벤트로 그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그에게 물었다.
엄연히 도서정가제 있지만 독자들에겐 ‘이중가격’이 분명 존재
유통의 문제는 자본이 스스로 해결 못해…결국 정부가 나서야
지역서점은 일종의 복지시설…‘책 생태계’ 위한 거시적 관심을
- ‘노벨상 특수’에 출판계와 대형 서점은 활짝 웃었지만, 공급을 제때 받지 못한 지역에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 유통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 같은데요.
“책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유통구조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대형 소매점인 교보문고가 도매업도 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통은 나라마다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도소매업을 함께 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고 있느냐면, 도매상 부도 등으로 책 공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서점계의 요구에 따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교보문고와 손을 잡았고, 2020년부터 교보문고가 도매업까지 하게 됐어요. 그때 이미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기도 해요. 많은 출판인들이 우려했던 일인데,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겁니다. 당시 일선 서점들의 교보문고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도매업까지 같이 하면 괜찮겠느냐며 독과점화에 대한 우려가 많이 제기됐어요. 그러나 교보문고엔 한국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책이 들어가고 시스템도 좋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이 됐어요. 그러곤 지금까지 잘해왔어요. 하지만 이번처럼 책이 부족한 상황이 되니까 지역서점은 뒷전으로 밀린 거죠. 지역서점 절반가량과 거래하는 교보문고로선 공적인 도매상의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영업이익을 위해 자사의 소매업 역할을 우선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는데, 시장 논리를 따라 자사에서만 판매를 독점한 것이죠.”
실제로 교보문고는 노벨상 수상 직후 일주일간 한강 작가 책들에 대해 지역서점들의 주문을 막았다가,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상생’을 내걸며 물량을 풀었다. 이에 분노한 지역서점이 교보문고가 뒤늦게 보내온 한강 책을 반품하는 일도 벌어졌다.
- 교보문고의 조치에 책방들은 더 화가 났습니다.
“현장 얘기 들어보면 교보가 책을 공급·반품하는 시스템이 제일 좋대요. 심지어 공급 마진율도 다른 업계보다 저렴한 5% 수준입니다. 그 점 때문에 책방들이 교보문고와 거래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 책을 안 주니까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 된 거예요. 책방들이 주문할 때 선입금을 하거든요. 광주의 서점 ‘책과생활’만 해도 도매 업체 4곳에 선입금을 했답니다. 대출까지 받아서 2000만원을 입금했는데 책을 못 받았으니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그리고 웬만한 독자들은 예약 주문 걸어놓고 책 구입을 다 했을 때쯤에서야 교보문고가 물량을 풀었어요. 그것도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에서 교보문고가 한 작가 도서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낸 시점에 풀었단 말이에요. 그래놓고 지역서점과의 ‘상생’이라며 생색을 내니 분노할 수밖에요. 언론들도 교보 얘기만 듣고 ‘상생 조치’라고 받아 적으니 반품까지 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 내라고 한 것입니다.”
- 고민은 결국 책방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일 텐데요.
“책방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독립서점의 경우 규모가 작고, 위치도 외진 데다 책방 대표 혼자서 운영하는 곳이 많아요. 본인의 노동력을 담보로 유지해가는 구조다 보니 플러스알파를 고민해요. 예를 들면 홍대 근처 책방 ‘리스본’, 경남 통영의 ‘봄날의책방’만 해도 8년 이상 됐고 지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책방들인데요, 다들 부업을 하고 있어요. 광주 ‘책과생활’은 편집자 출신이 하는 책방인데 관공서의 책 편집 기획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전북 전주 ‘청동북카페’도 마찬가지로 카페와 공간 임대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판사 경험을 살려 기획사를 하고 있어요. 이들만 해도 전직이 있으니까 안정적인 부업을 하고 있는 사례이고, 그 나머지는 가장 대표적인 게 음료를 파는 것입니다. 운영에 어려움이 있으니 어떤 것 하나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러다 보면 삶이 고돼요. 포기하고 문을 닫는 곳들도 생기고…, 지금 현재 상황은 그렇습니다.”
- 그럼에도 동네책방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떤 지역이 살 만하려면 여러 가지가 있어야 하죠. 공원, 극장·도서관도 있으면 좋겠고, 그중에 ‘서점도 있으면 좋겠네’ 하는 겁니다. 제가 <유럽 책방 문화 탐구>를 쓰려고 계획을 세우면서 처음엔 도시를 중심으로 잡았는데 다니다 보니 잘 모르는 지역인데도 괜찮은 서점들이 있더라고요. 괜찮은 서점이 있는 지역엔 문화적 기반이 있고요. 서점은 일종의 복지시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책 안 읽어도, 서점 없이도 살 수 있죠. 그런데 동네에 서점이 생기고 그곳을 다니다 보면 좋은 걸 깨닫게 돼요. 작은 동네에 서점을 연 주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들이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라고 합니다. 서점은 필수재는 아니지만 자기 삶에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 어떻게 해야 동네책방의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책 할인을 15%(가격 할인 10%+마일리지 5%)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제한 법입니다. 엄연히 도서정가제가 있지만 독자들에겐 이중가격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가령 온라인 서점은 공급률(정가 대비 공급가격의 비율)이 낮으니 이익률이 훨씬 높아요. 또 우리나라 대형 소매업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는 과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익률이 훨씬 높아요. 하지만 동네책방은 마진이 낮아 15% 할인 판매를 할 수 없어요. 독자는 한 푼이라도 싼 곳으로 가겠죠. 특히 한강 책 특수에서 드러난 것처럼, 1년에 책을 몇권 사지 않는 사람을 저는 ‘간헐적 독자’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보통 유명한 책을 사거든요. 당연히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요. 도서정가제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독자의 마음에는 이중가격이 존재해요. 이런 상황에서 이만큼 하고 있으면 정말 잘하고 있는 겁니다. 동네책방들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묻지 말고 ‘도대체 나라가 서점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어떤 것이냐’라고 오히려 묻고 싶어요.”
- 정부의 태도는 어떤가요.
“정부가 서점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보잘것없어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원 시스템 등이 너무 많이 바뀌고요. 그냥 각자도생해야 해요. 문화체육관광부는 돈 되는 사업에만 관심이 쏠려 있죠. 정부가 서점, 도매상, 출판 등 책 생태계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줬으면 합니다.”
- 출판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는 뭐가 있을까요.
“첫째, 이중가격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요. 하지만 예를 들면 지금 도매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도소매업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이번 한강 책 공급처럼 문제가 생긴다면 해결을 해야 될 거 아닌가요. 이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어요. 자본이라는 건 스스로 해결 절대 안 해요. 그러면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컨소시엄을 열고 해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그게 국가가 할 일이죠. 둘째, 이중가격 문제는 결국 유통의 문제 때문인데요. 마찬가지로 대자본이 이걸 절대 스스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합리적인 방안을 생각해야죠.”
-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일본은 대형 도매상 두 곳이 모든 도서를 공급하고 있고, 독일은 ‘공급률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모두 같은 공급률로 책을 받으니 우리랑 시스템이 달라요. 우리 유통 시스템이 이렇게 자리 잡은 덴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어요. 그렇지만 문제가 있으면 서점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 고민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 나올 때마다 늘 사례로 드는 곳은 프랑스예요. 프랑스는 국립도서센터가 서점 지원 사업을 하는데, 이자 없이 자금 지원을 해요. 서점 인증을 받으면 우리로 치면 지방세를 감면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서점을 일반 자영업과는 좀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존재해요. 우리는 쉽지 않은 게 그렇게 해주면 왜 서점만 해주고 다른 자영업은 안 해주냐는 얘기가 나오겠지요.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라는 게 그렇잖아요. 오늘부터 갑자기 무얼 한다고 해서 한강 같은 작가들을 바로 키워낼 수 있겠어요?”
- 책 안 읽는 사회에서 ‘한강 르네상스’가 이어질지에도 관심이 모아지는데요.
“한강 작가의 책이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읽기는 평소 습관이 돼야 하는데, 책 한 권 안 읽던 사람들이 읽으려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300만~400만부까지 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박세리 키즈가 있듯이 ‘한강 키즈’가 나와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보면 특별히 우리가 뭘 잘해서, 정책적인 창작 시스템이 있어서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 책 읽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데 윤석열 정부는 도서 관련 예산을 죄다 깎고 있습니다.
“서점은 그 나라 문화의 최전선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걸 향유하고 있고 그다음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또 사람들이 지적 역량을 개발하고, 커뮤니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한 나라의 문화사·지성사를 압축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서점을 조금 폭넓게 바라봐주시는 시선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학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서점인들의 몫이었지 정부는 물러서 있었어요. 모든 문화 콘텐츠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점검이 필요합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좋은 ‘핑계’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노벨상 수상자, 전직 대통령이 서점을 하는 대단한 나라예요. 읽는 사회로 가기 위한 좋은 기회입니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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