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스마트폰 제한, 강제 대신 ‘소양교육’
‘폰은 안 되고 AI 교과서는 되나’…현장에서도 의견 엇갈려
“스마트폰 사용을 법으로 금지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경기도의 한 초등교사인 이정은씨는 최근 이슈가 된 학내 스마트기기 사용 금지 법안을 보고 “너무 허술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령에 스마트워치 등 착용형 기기를 하나하나 나열해서 규제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했다.
반면 서울 노원구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정모씨는 “학교에서 일과 중엔 스마트폰을 걷어가지만 강제가 아니어서 관리가 어렵고,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기기인 디벗조차도 버그를 어떻게 뚫으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등 불안한 측면이 있다”며 “학부모들은 대부분 학교 내 스마트기기 제한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학내 스마트기기 사용 금지 법안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학내 스마트폰 사용을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강제로 못 쓰게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는 5일 학교에서 스마트기기 사용에 관한 소양교육을 실시하도록 한 교육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당초 교육기본법 개정안에는 ‘학생이 스마트기기를 적정시간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육 시책을 수립·실시’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법사위에는 ‘소양교육’으로 규제 수준이 낮아진 안이 넘어갔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는 스마트기기 사용을 학교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화제가 됐던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국회 교육위에서는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지난 9월 국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서적 안정 등을 위해 잠시 스마트폰 사용이 제한돼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도 “법안 발의에 전적으로 찬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당에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진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학생자치로 규칙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고민정·강경숙 의원)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법안 통과가 보류됐다.
교육부는 표면적으로 “입법 취지를 환영한다”면서도 애매한 처지에 놓였다. 내년 1학기 초중고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일괄 도입하는데, 학내 스마트기기 사용 제한 법안에 찬성하는 것이 모순되는 측면이 있어서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9월 “스마트폰과 AI 교과서에 쓰이는 디바이스는 나눠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정부가 AI 교과서를 추진하면서 스마트기기를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주는데, 여당이 스마트기기를 못 쓰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줄곧 스마트폰 사용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혀온 한국교원총연합회는 국회 의견서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행정력이 학생이 스마트기기를 적정시간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까지 미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모든 스마트폰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법안 취지에 대해서는 일부 공감하고 학교 구성원이 학칙으로 정하게 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김원진·탁지영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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