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을 사랑했던 츠치다 마키를 추모하며

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2024. 11. 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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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지난 10월 말 세상을 떠난 전직 기자이자 프로듀서 일본인 츠치다 마키(土田眞樹)를 추모한다.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한국말 잘 하는 일본인 기자’로 유명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수많은 양국의 영화인에게 도움을 줬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산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65년생인 츠치다 마키는 일본의 야마구치현 태생으로, 198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처음으로 밟은 한국 땅이 부산이라는 것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닿는 부관훼리를 통해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이후 그는 한국의 영화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결정적 사건 역시 부산에서 이뤄졌다. 처음에 그에게 부산은 일본과 서울을 왕래하기 위해 ‘통과하는 곳’이었지만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기점으로 ‘애정하는 곳’이 됐다.

츠치다 마키는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영화제 ‘1호 외국인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일본인 관객이나 게스트의 통역은 물론 당시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서 열린 개폐막식의 인원 통제까지 많은 부분에서 활약했다.

그 이후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1997년, 경제학도였던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한 대중문화 가이드 잡지 ‘서울스코프’의 기자로 취업했다. 그리고 올해, 제 29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방문했다. 최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의 전문위원으로 위촉돼 스태프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 영화인들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처음엔 일본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주로 했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 잡지 ‘키네마 준보’에 한국 영화에 대한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했으며 ‘겨울연가’로 한류 붐이 일던 시절에는 윤석호 프로듀서의 연출 노트인 ‘겨울연가 비밀일기’를 일본어로 번역해 총 43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국제화에 도움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역도산’에서는 설경구의 일본어 지도와 감수를 맡기도 했고 극진공수도의 창시자인 한국계 일본인 최영의의 삶을 다룬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도 일본어 지도를 맡은 바 있다. 기자 생활 이후로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화 프로듀서 생활을 했다. 2016년 그가 제작한 영화 ‘연기의 중력’은 2016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미국의 부시윅 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했다. 이후 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가 창립한 제작사 가이낙스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한일합작 프로젝트를 해당 회사가 문을 닫은 올해까지 진행해 왔다.

그는 부산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가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엔 ‘부산 사람보다 부산 맛집을 더 잘 아는 일본 사람’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처음 부산을 찾는 기자들에게 ‘일본 사람으로부터 부산을 안내받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0월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그는 공식적 역할 없이도 한국 혹은 일본의 영화인들과 네트워킹하며 부산을 알리고, 또 부산을 즐겼다.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황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츠치다 마키는 스물 아홉 번째의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을 마치고, 일본의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열리는 저명한 영화제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그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쓰러진 그는 일어나지 못 했다. 평생 영화를 사랑한 사람이 영화제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서 필자는 칸 국제 영화제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기억이 겹쳐져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 그리고 부산을 사랑했던 영화인의 부고를 전하며 다시 한 번 그가 평안히 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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