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언론탄압’도 견딘 생명력…‘77년 고목’ 국제신문을 살리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제신보(국제신문 전신)는 자유당 말기 언론 탄압을 받았다.
국제신문은 정론으로 보답했다.
국제신문은 신군부의 언론 탄압을 받았다.
국제신문은 한국 언론에서 중요한 신문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지역역사 기록자이자 비판자
- 시민 소액응원광고 등 필요성
국제신보(국제신문 전신)는 자유당 말기 언론 탄압을 받았다.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였다. 종이를 살 돈이 없어 3일 동안 신문 발행을 중단했다. 주필 겸 편집국장이었던 나림 이병주 선생이 자유언론을 사랑한 유원산업 창업주 학초 최재형 회장을 찾았다. 마산에서 선생은 300만 환(현재 가치 10억 원 이상) 현찰을 지프차에 실어 주었다. 영수증도 없는 그 돈으로 국제신보는 기사회생했다. (김호영 ‘학초평전-마산의 작은 거인’ 서문)
국제신문은 정론으로 보답했다. 훗날 나림 선생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최재형 선생 후손이 경영하는 기업의 오가피주 광고 모델이 되어 보은했다. 국제신문 첫 번째 생존기다.
국제신문은 신군부의 언론 탄압을 받았다.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이 있었다. 권력이 신문 발간을 막았다. 국제신문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9년 동안 저항했고 탐색했다. 다시 독자에게 다가왔다. 1989년 2월 복간했다. 국제신문은 정말 끈질긴 신문이다. 국제신문 두 번째 생존기다. 올해는 복간 35주년·창간 77주년이 되는 해다.
국제신문은 현재 세 번째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경영악화다. 임금도 퇴직금도 생존도 불투명하다. 종이신문 위기·코로나 위기에다 대주주(능인선원)의 김해 윤전공장 투자 실패가 겹쳤기 때문이다. 국제신문 구성원은 대주주의 무책임 경영을 비판하며 결별을 원한다. 신뢰가 무너졌다면, 헤어지는 것이 맞다.
국제신문은 아프다. 국제신문은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국제신문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공적 역할도 한다. 신문사는 기록자이며 비판자다. 부산 울산 경남 역사와 함께하면서 기록하고 성장한 대표적 언론사다.
내 생각이다. 국제신문은 기고·논단·사설이 강하다. 지역 현안·지역 균형 발전도 명확하게 분석한다. 가덕도신공항도 지지한다. 사건 사고·문화면·산·학교·학생·의료·역사·경제 등 발로 뛴 내용이 많다. 사진기사·시사만평도 재미있고 예리하다. 소소한 생활 정보가 많다. 마라톤·걷기·주관 행사도 많다. 신춘문예도 있다. 여러 문학상도 후원한다. 77년 동안 수 많은 활동을 펼쳤다.
77년 고목을 살리자. 국제신문은 한국 언론에서 중요한 신문이다. 역사성·정체성·존재이유가 뚜렷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신문이다. 자유언론을 사랑한 최재형 선생 같은 인물이 다시 혜성처럼 나타나길 고대한다. 그때까지 국제신문을 돕자.
국제신문이 사라진다면 부울경의 비극이다. 유럽에서 벌어진 소액 지면광고 방식의 신문사 살리기 운동이 기억 난다. 우리도 독자와 시민이 힘을 합쳐 소액 응원 광고로 국제신문을 후원하자. ‘국제신문을 응원합니다. ○○○’라는 명함보다 작은 광고 형태로. 광고는 기업만 하는 게 아니다. 국제신문에 이름이 한 번이라도 소개된 지역 명사들은 이번 기회에 10만 원 후원으로 은혜를 갚자.
가덕도신공항이 완공돼 세계 각국 비행기가 부산에 오면, 국제신문도 이 비행기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부울경의 힘이 될 것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