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위상 보여준 카잔 브릭스 회의 [김동기의 월드워치]
편집자주
세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적 불확실성 매우 커졌다. 우리의 미래 또한 국제적 흐름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 이 흐름의 실상과 방향을 읽어 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주축인 브릭스(BRICS)가 글로벌 무대에 등장한 지 18년이 된다. 올해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가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브릭스는 9개국 협의체가 됐다. 이 9개국은 세계 인구의 약 45%를 차지한다.
지난달 22~24일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의장국인 러시아 카잔에서 열렸다. 타타르인들이 사는 천년의 고도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창설 후 최초로 134개 합의 사항이 담긴 공동성명, 즉 카잔 선언이 채택됐다. 다자주의 세계질서 강화, 세계 및 지역 안보를 위한 협력 강화, 경제 및 금융 협력 증진, 인도주의적 교류 확대가 그 주요 내용이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강화, 13개 파트너 국가 지정을 통한 외연 확장 등도 주요 의제였다.
그런데 브릭스의 실체를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브릭스는 글로벌 경제통합 프로젝트가 아니다. 브릭스는 회원국 간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 및 사회발전에 기여하려고 한다. 또 브릭스는 서방에 대립하는 다자간 정치 혹은 안보 동맹이 아니다. 회원국 간의 분쟁, 혹은 회원국과 제3국 간의 분쟁 해결에 관여하지 않는다. 브릭스는 결코 G7과 유사한 기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유엔(UN), G20 그리고 다른 국제기구들에 새로운 제안을 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글로벌 문제에 대해 비서방 측의 공통 의견을 도출하려고 한다.
브릭스의 현실적 한계는 이번 회의에서도 드러났다. 푸틴은 정상회의 전에 단일한 브릭스통화는 현재 검토되지 않고 있고, 러시아는 달러에 대항해 싸우는 게 아니라고 명백히 밝혔다. 단지 이번 회의에서는 회원국들의 통화 사용 확대를 통해 금융다극화를 촉진하기로 하는 데 의견을 모았을 뿐이다. 현 국제금융체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메시징 서비스인 브릭스브리지, 블록체인 기반 예탁시스템인 브릭스클리어,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결제서비스인 브릭스페이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라, 서방이 기존 플랫폼을 무기화했을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브릭스가 진정한 대안 기구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중국의 크고 작은 은행들은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엄격히 준수한다. 중국에 소재한 은행에 오직 달러로만 납부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러시아는 상하이협력기구에 회비마저 납부할 수 없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깊이 연계돼 있기 때문에 자국 은행들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두려워한다. 인도보다도 제재 위협에 더 민감하다. 중국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기존 국제금융질서와 결별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브릭스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을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브릭스 정상들은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제안한 브릭스 곡물거래소 창설을 지지했다. 곡물거래소는 원유, 가스, 광물 등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요컨대 이번 카잔 정상회담은 구체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브릭스는 자발적 기구로서 일부에서 기대하듯이 서방이 주도하는 기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는 회원국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다. 브릭스는 비서방 국가 중 주요 국가들이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중대한 현안, 특히 경제 및 금융 이슈를 논의하는 포럼이 될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 이번 정상회의는 주최국인 러시아에는 성공이었다. 36개 국가와 6개 국제기구가 참가했으며, 참가국 중 22개국은 국가 원수가 직접 참석했다. 이는 러시아에 2만 건이 넘는 제재를 하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 했던 서방의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동기 작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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