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반도체전쟁 치열한데 적어도 `강제퇴근`은 막아야
필자는 25년 전 언론계에 발을 들이기 전 한 IT 업체에서 기획 일을 2년 정도 했었다. 간단한 코딩 업무도 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개발자들은 밤샘업무를 밥먹듯 했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그럴만도 했던 게 워낙 작업이 복잡하다 보니 한번 탄력을 받으면 끝까지 가야 하고, 다음날 어디까지 작업을 했는지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차라리 일주일 밤을 새든 해서 다 끝내놓은 다음에 푹 쉬는게 속이 편했다. 남겨놓고 오면 집에 가서 쉬지도 못하고 불안해 했다.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오후 5시반에 컴퓨터를 끄고 퇴근하지 않으면 인사팀에서 경고 메시지가 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업무별로 일하는 방식이 다른데 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게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이 임원은 말했다.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배경은 근면·성실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노동생산력, 수출의 20%를 책임지는 반도체의 경쟁력에서 비롯했다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기준 반도체가 한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로 전 품목 중 가장 크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경쟁력과 반도체 산업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노동생산성은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3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주요 생산기지는 외국으로 옮겨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주된 이유지만,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획일적인 노동 규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추격에 직면한 반도체 업계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의 필요조건인 연구·개발(R&D)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 반도체 업체의 모습을 봐도 이는 설득력이 있다. 지난 8월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 직원들은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 주7일 근무할 때도 주기적으로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SMC의 류더인 전 회장 역시 작년 6월 미국 애리조나 팹 근무 시간에 대한 미국 임직원들의 불만과 관련해 "일할 준비가 안 돼 있는 사람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AI 경쟁에서 이겨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담긴 메시지다.
하지만 한국은 경직된 근로시간 이슈에 갇혀 있다. 대만 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대만 근로자들의 월 평균 근로 시간은 180.3시간인데, 한국의 경우 2023년 기준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56.2시간에 불과하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는 지난해 한 칼럼에서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직원이라도 중간에 업무를 접고 퇴근할 수밖에 없다"며 "TSMC는 초과근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2교대를 주로 사용하고 필요하면 3교대도 투입한다"고 이에 대해 비판했다.
재계에서는 적어도 반도체에 한해서는 예외조항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4월 내놓은 '기업이 바라는 22대 국회입법방향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35.4%),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21.1%) 다음으로 노동시장 유연화(20.8%)를 검토해야 할 우선과제로 꼽았다.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고위관리직·행정직·전문직·컴퓨터직·영업직에 해당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 10만7432달러 이상의 고소득 근로자를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예전부터 적용 중이다. 일본은 금융상품개발·애널리스트·신상품 연구개발·경영컨설턴트 등 생산직이 아닌 근로자 중 연 1075만엔 이상의 고소득자인 경우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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