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조용필, 놀라운 국민가수인 이유

2024. 11. 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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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조용필은 가왕이며 국민가수라 불린다. 요즘 어린 세대는 조용필이 과거 유명했던 인기 가수 중의 한 명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용필의 인기는 그런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경제가 가난과 결별한 80년대 이래 조용필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가수는 없었다.

80년대 코미디계에선 이주일과 심형래가 범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가요계에선 세대별 취향 분화가 확연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어린 세대가 열광하는 가수와 기성 세대가 선호하는 가수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조용필만은 그런 세대별 취향 분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생과 10대 등에게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렸다. 요즘 아이돌 팬덤이 갈리는 것처럼 당시 교실에선 조용필파와 전영록파가 갈렸다. 그러는 한편 고령의 국민들에게도 압도적 인기를 누렸다.

요즘은 인기의 저변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가 폭넓기만 해도 국민가수라고 부른다. 초등학생부터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는 가수가 가능하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래서 국민가수의 조건이 어느 정도 완화돼 어느 정도 저변이 넓기만 해도 국민가수라 부르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글자 그대로 전 연령대로부터 사랑받은 가수는 80년대 이래 조용필뿐이다. 심지어 남녀 성별차도 거의 없었다. 요즘 케이팝계에선 여성들이 좋아하는 가수와 남성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확연히 갈린다. 그 시절 조용필에겐 남녀 모두가 열광했다. 이래서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진정한 국민가수이자 대한민국의 가왕으로 불린 것이다.

조용필이 그렇게 폭 넓은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은 것은 다양한 음악을 했기 때문이다. 록, 트로트, 민요, 동요, 발라드, 가곡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한국의 주류 장르 대부분을 섭렵했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됐는데, 보통 이 정도 위치에 오르면 어느 정도 안주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당시 조용필의 나이는 대중 가수로서 정점이 지났다고 여겨지는 30대였다. 당시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새로운 시도보단 기존 히트곡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용필은 창작과 새로운 시도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런 행보가 더욱 놀라운 건 그때가 80년대였기 때문이다. 가수가 시스템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돼 자신만의 휴식과 창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90년대 이후부터다. 80년대까지는 방송사와 소속사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대중문화산업 시스템은 인기 가수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용필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공연도, 적당히 방송용 사운드로 남들 하듯이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간과 재산을 들여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어갔다. 그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라며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시대와 호흡하고 변화해갔다. 그래서 압도적인 국민가수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의 중단 없는 전진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2013년에 모던록을 담은 19집 '헬로'로 큰 충격을 안기더니 지난 11월 1일엔 정규 20집인 '20'을 발매했다. 19집과 20집은 직접 작곡을 한 건 아니지만 그가 음악감독의 역할을 하면서 곡 작업을 총괄 지휘했다. 음악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가사의 메시지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번 타이틀곡인 '그래도 돼'는 운동경기에서 소외되는 패자를 보며 그를 응원하고자 했던 조용필의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가수로 롱런하기 위해선 "노래하는 게 좋아야 하고 다양한 장르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계속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단순히 원론적으로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필 스스로가 평생 실천해온 삶의 자세다. 그는 요즘도 AFKN 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 접한다고 한다.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번 앨범을 내기 위해서 수백 곡을 교체하고 사운드를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이러한 열정이 그를 70대 중반까지 가요계 정상에 머물게 했다.

다음 달에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 탄생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 후엔 전국 투어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사운드로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원로가 이렇게 열정을 보이니까 후배들 모두가 그를 우러른다. 조용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케이팝 후배들의 전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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