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시선에도 좋은 사람을 꿈 꿔요”···공연으로 풀어낸 소년범들의 의지
“우리를 향한 세상의 시선들이 차가울 때도,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어도, 때로는 다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우릴 일으켜준 커다란 꿈을 꾸었죠.”
길거리에서 부딪힌 행인을 때려 소년보호 재판을 받은 15살 A군은 “까불길래 한 주먹 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조사하는 경찰에게도, 자신이 6개월간 머물게 된 소년보호시설 교사에게도 경계심이 많았다. 그런 A군이 점차 일상을 되찾은 것은 “네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왔다”며 반겨주는 소년보호시설의 교사와 또래들과 어울린 덕이었다. A군은 시설에서 나와 “앞으로 잘 할게요”라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어둠 속으로 멀어진 꿈들, 이제는 그릴 수 있죠”라는 합창 소리가 흘러 나왔다.
A군의 이야기는 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무대에서 펼쳐진 연극 <우리들은 열다섯>의 장면들이었다. 소년보호시설 살레시오의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이 연극은 이날 서울가정법원이 개최한 청소년 문화제 ‘Super Style, 2024-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에서 펼쳐진 공연 중 하나였다.문화제에 참석한 ‘보호소년들’은 뮤지컬과 치어리딩 등 총 6개 공연을 선보였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에 선 보호소년들은 저마다의 꿈을 이야기했다. 약 40명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꿈은 ‘좋은 사람’ 그리고 ‘당당한 아빠’였다. ‘지인으로 만나면 커피 한 잔 사줄 수 있는 사람’ ‘평범한 사람’을 꿈 꾸는 소년들도 있었다. 교복을 입은 살레시오 청소년들이 검은 외투를 벗어던지는 장면으로 공연은 끝났다.
공연을 지도한 정회인씨는 “긴 인생에서의 잠깐의 실수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우린 아직 열다섯이고, 꿈이 있다는 것을 모든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보호소년 약 300명은 모두 소년보호 재판을 받아 소년보호기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소년법상 만 10~18세 청소년은 비행을 저질렀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소년보호기관은 ‘6호 처분’을 받은 보호소년들을 법원으로부터 위탁받아 보호·교육하는 기관이다. 8~10호 처분을 받은 소년들이 송치되는 법무부 소관 소년원과는 구분된다. 현재 서울가정법원에서 위촉한 기관은 총 7곳으로, 보호소년들은 소년보호기관에서 약 6개월~1년 동안 생활한 후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
이번 문화제는 올해로 12회를 맞았지만, 지난 5년간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부딪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최근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소년법 개정과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보호소년들에 대한 낙인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의 상한을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으나, “개선 및 교화의 가능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보호소년들의 재사회화를 위한 제도와 환경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다. 보호소년들의 재범율을 낮추기 위해 보호기관을 확대하고 교화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법원에서는 보호소년들이 보호기관에 입소하기 전 판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면담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날 문화제에도 보호소년들의 재판을 맡았던 전국 가정법원 판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판사님들의 말 한 마디가 (보호소년들이) 새 삶을 살도록 영향을 많이 줘서 (판사님들에 대한) 애착이 크다”며 “판사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주는 보호소년들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보호소년들의 생활은 시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번 문화제를 통해 서로 협동하고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이들이 앞으로 잘 교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문화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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