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대강당에 줄 긋는다고 '예식장' 될까요? [視리즈]

이지원 기자 2024. 11. 5. 17: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公共예식장 空空예식장 2편
공공예식장 오류의 출발점
한국경제 최대 과제 저출생
저출생 대책 대부분 거대담론
체감하지 못하는 청년들 숱해
결혼 문턱 높이는 웨딩플레이션
결혼 준비 비용 깜깜이 문제…
대안으로 떠오른 공공예식장
숫자 늘었지만 성과 미미한 까닭

"부동산 잡아야 혼인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취업 정책을 바꿔야 출산율이 올라간다"…. 정치권이 내놓은 혼인·출산율 제고 방안들은 거시담론이거나 현실을 읽지 못해 '웃픈' 경우가 많다. 좀 더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청년들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웨딩플레이션'을 잡는 첫 단추, 공공예식장이다. 하지만 내재적 문제가 숱하다.

고물가 국면 속에 웨딩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저출생'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2022년 1.51명)의 절반 수준이자, 회원국 중 꼴찌다. 이런 저출생의 배경엔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청년 세대의 '경향성'이 있다.

통계청의 '사회동향(2022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절반(50.0%)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2년 동일한 조사 결과(62.7%) 대비 12.7%포인트나 감소했다. 특히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중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각각 35.1%, 40.6%에 그쳤다.

당연히 혼인 건수도 감소세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700건으로 전년(19만1700건) 대비 소폭 늘긴 했지만 이는 팬데믹 탓에 미뤄졌던 결혼 수요가 몰린 영향이 크다. 2018년 혼인 건수가 25만7600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새 24.8% 감소했다고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이렇게 청년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자금 부족(28.7%)'이다. 결혼자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주택 자금'이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억3785만원(이하 2024년 9월·KB부동산), 전세가격이 4억1376만원에 달하다 보니 보금자리 마련부터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청년들 중엔 결혼이란 선택지를 지워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저조한 혼인율을 끌어올리고,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초점은 대부분 거시담론에 맞추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통해 주택 가격을 잡으면 혼인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거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등 취업 정책을 통해 일·가정 양립을 이루겠다는 식이다.

[사진 | 뉴시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대부분 법을 뜯어고쳐야 하거나,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효과를 내는 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당장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청년들은 "현생에선 결혼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결혼자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청년들의 결혼자금 부담이 부쩍 커진 덴 주택가격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결혼 비용이 줄줄이 오르는 '웨딩플레이션(Weddingflation)'도 예비부부들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웨딩플레이션이란 '결혼(Wedding)'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예식장,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사진촬영 등 결혼 관련 비용이 줄줄이 오른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조사(2024년)에 따르면 결혼 1~5년차 기혼부부의 평균 결혼자금은 3억474만원에 달했다. 신혼집 관련 비용 2억4176만원을 빼고도 결혼 준비에 6298만원을 썼다. 혼수 2615만원, 예식장 990만원, 신혼여행 744만원, 예단 566만원, 스드메 479만원 등 돈 나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거다.

이같은 웨딩플레이션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심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면서 폐업하는 예식장이 급증한 데다, 이어진 고물가 국면에서 웨딩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데믹(풍토병·endemic) 전환 이후 결혼을 미뤘던 수요가 몰린 것도 웨딩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그렇다면 결혼 준비 비용은 얼마나 오른 걸까. 필수적인 결혼 준비 비용인 '예식장'과 '스드메' 가격을 비교해 보자.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2020년 '예식장+스드메' 비용은 1246만원에서 2024년 1643만원으로 치솟았다. 4년 새 31.8%나 오른 셈이다.

12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A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대출을 끌어다 전세자금을 마련하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시간이면 끝나는 결혼식에 수천만원이 들다 보니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엔데믹 전환 이후 고물가 국면에서 웨딩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했다.[사진|연합뉴스]

청년들에게 '결혼=부담'으로 만드는 웨딩플레이션이 판을 치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웨딩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혼과 재혼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결혼식은 여전히 일생일대의 날이다.

당연히 예식장이나 웨딩드레스 같은 품목들은 살면서 한번 구매·이용하는 품목이다. 식품이나 의류처럼 반복 구매하는 품목이 아니다 보니, 소비자에겐 가격 데이터가 부족하다.

예비부부들은 온라인상의 '리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지만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정보를 공급자가 쥐고 있는 시장이라는 거다. 이같은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웨딩업체는 '갑'의 지위에 오르고, 소비자는 '을'로 전락한다.

여기에 업체들은 '결혼이란 이벤트는 일생에 한번뿐'이라는 점을 파고들어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만든다. 지난 9월 결혼한 신혼부부 B씨는 "결혼 준비 관련 품목들이 정찰제가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알기 어려웠다"면서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당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스드메의 경우 대부분 '옵션'으로 지정돼 있다. 원하는 드레스를 입으려면 100만~200만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고, 메이크업을 일찍 하려고 해도 '얼리비(early 비용)' 명목으로 10만~20만원을 더 내야 했다. 한번뿐인 결혼식이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11월 결혼 예정인 예비부부 C씨 역시 이렇게 꼬집었다.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려고 웨딩박람회를 찾았지만 가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할인을 받으려면 당일 계약이나 가계약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재구매가 일어나는 품목이라면 업체들이 소비자의 '눈치'를 보고 가격을 책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업체 간 가격 담합이 일어날 수 있고 불공정 행위를 할 소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웨딩업 관련 민원 건수는 매년 증가세다. 2022년 월평균 29.6건이던 관련 민원 건수는 2023년 30.5건, 2024년(1~3월) 33.3건으로 늘었다. 업종별 민원 비중은 예식장업이 50.9%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결혼준비대행업(14.3%), 촬영업(14.2%), 드레스·예복·한복업(6.6%), 미용업(2.2%) 등의 순이었다.

소비자들이 제기한 민원 내용도 다양했다. 예식장 이용 계약해제 시 과다한 위약금 청구, 예식장의 끼워 팔기, 웨딩플래너 관련 불투명한 가격 정보, 사진촬영 관련 추가금 사전 고지 미흡 등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각종 '꼼수'로 거품이 잔뜩 낀 웨딩플레이션을 잡는 것만으로도 청년들의 결혼 문턱을 낮춰줄 수 있다. 더스쿠프가 웨딩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공공예식장'을 들고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예식장은 말 그대로 공공公共이 예비 부부들에게 저렴하게 예식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공공예식장이 예식장의 대안으로 자리 잡으면, 웨딩 시장에 건전한 경쟁을 불러올 수 있고, 엮여 있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사실 공공예식장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공공예식장이 처음 등장한 건 1990년대다. 여러 지자체가 공공예식장을 지원했고, 2012년엔 여성가족부가 나섰다.

여가부는 '작은 결혼식'을 활성화하겠다며 공공예식장을 앞세웠지만, 7년 만인 2019년 별다른 실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업을 접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청년층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공공예식장을 48개나 늘렸지만 이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예식장의 성적표가 기대치를 한참 밑돌기 때문이다. 더스쿠프가 지난 6월 139곳의 공공예식장(정부 청년 맞춤형 예식공간 제공방안 근거)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결혼식이 한건도 열리지 않은 곳은 53.0%(83곳 중 44곳)에 달했다.

[※참고: 139곳의 공공예식장 중 올해 신규로 지정한 48곳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이하 서울), 매헌시민의 숲, 용산가족공원 그린결혼식, 월드컵공원 소풍결혼식 등 4곳은 통계에서 제외했다. 여기에 운영을 중단한 2곳(부천 소향관·소사홀), 자료가 없다고 밝힌 2곳(경기 너른못·전남 농업박물관 모정)도 추가로 뺐다. 이에 따라 실적을 판단한 공공예식장의 수는 83곳이었다.]

이렇게 공공예식장이 예비부부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별다른 게 아니다. 예비부부들의 니즈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공예식장의 평균 사용료는 11만2000원으로 저렴하지만, 대부분 장소만 제공한다.

예식 공간을 꾸미는 것부터 예식 진행, 식사까지 모두 직접 준비해야 한다. 주차 공간이 없거나 식사가 불가능한 곳도 적지 않다. 공공예식장이 예비부부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원인들이 숱하지만 정부는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는 셈이다.

좀 더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공공예식장을 지원해야 하지만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다. 공공예식장 정책을 주도하는 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다. 하지만 기재부와 행안부의 역할은 관련 부처나 지자체에 공공예식장 운영을 독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공예식장 운영을 준비 중인 국립시설 관계자는 "기재부로부터 (사업에) 참여하라는 요청이 와 공공예식장 공간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관련 공간을 마련할 재원이 부족한 데다 운영 업체 선정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공공예식장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공공예식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공예식장 관련 정부 지원 예산은 '제로'다. 기재부와 행안부 모두 관련 예산을 따로 지원하지 않고 국립시설과 공공기관, 지자체에 맡겨두고 있다. 문제는 가장 많은 공공예식장을 운영하는 서울시조차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공공예식장 홍보 관련 예산만 3300만원 책정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서울시는 올해 공공예식장 사업에 2억880만원을 지원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예식장이 24곳에 달하니 한곳당 연간 예산이 870만원, 한달 예산이 72만원인 셈이다.

이은희 교수는 "공공예식장이 자리 잡지 못하는 건 한번뿐인 결혼식을 잘 치르고 싶은 예비부부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공공예식장이 자리 잡기까지 정부가 적절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공공예식장은 웨딩플레이션을 잡고 청년들의 결혼 준비 부담을 덜어줄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 기존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또다시 실패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이야기는 公共예식장 空空예식장 3편 초라한 성적표에서 이어나가보자.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최아름·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