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42〉기초과학연구진흥법 제정…기초과학육성 도약대

2024. 11. 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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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장관이 89년 1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새해업무계획에서 “기초과학육성법을 제정하겠다”고 보고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의 소신은 확고했다.

이상희 장관은 1988년 12월 장관 임명 전부터 기초과학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1988년 6월 학계 인사 중심으로 기초과학정책연구회(가칭)를 구성했다. 당시 서울대 자연대학 장세희 교수와 최병두(물리)·김종식(수학)·이계준(생물) 교수가 중심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새로운 법과 제도 수립 등에 관해 연구했다.

이상희 장관은 그 이유를 생전에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기초과학 진흥 없이는 우리가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당시 우리 기초연구 능력은 너무 취약해서 한국경제의 장래가 위기에 몰릴 것은 자명했습니다. 그 무렵 한국 과학기술 수준은 세부 설계와 가공, 조립, 제작 과정 등 생산 기술과 주변 기술은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었지만 기본설계·소재·소프트웨어(SW) 등 핵심 기술은 크게 낙후했습니다.

그는 장관직에 취임하자 가장 먼저 기초과학 진흥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상희 장관은 1989년 1월 초 신년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과학기술은 한 나라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올해를 '기초과학 육성 원년'으로 정해 과학기술 기초를 다져 나가겠습니다.”

이상희 장관은 1989년 1월 25일 대통령에 대한 새해 업무계획에서도 “올해를 '기초과학연구 육성 원년'으로 설정해서 기초과학 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올해 안에 기초과학연구 육성법을 제정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말. “당시 국내 기초과학 연구의 현실은 열악했습니다. 대학교수 1인당 1년 연구비는 500만~7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연구시설도 형편없어 전자현미경을 갖춘 대학연구실은 극소수였어요. 밤 10시면 연구실 불을 모두 껐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기초과학육성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이 업무는 과학기술처 기초종합연구조정관실에서 담당했다. 당시 국장은 경종철 박사였다. 경종철 국장의 열성은 대단했다. 경 국장은 개인적으로 친한 서울대 이계준 교수를 사무실로 나오게 해서 토·일요일에도 밤 12시까지 일을 했다.

당시 조정관실에서 이 업무를 담당한 박승렬 전 기상청 총무과장의 말. “이 교수는 '나는 서울대 교수가 아니라 과학기술처 사무관'이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주말에 과학기술처로 나와 밤 12시까지 작업을 했어요. 그분의 노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입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연구 지원은 자신들이 주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대학들도 기술처 입장에 반대했다.

이상희 장관은 직접 전국 주요 대학을 방문해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계는 기초과학육성법 제정을 적극 지지했다.

1989년 4월 11일 오후 3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강남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2000년대를 지향하는 과학기술과 기초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에는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과 조완규 서울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기초과학연구활성화를 촉진하는 건의서를 채택하고 100만 과학기술인 서명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이상희 장관의 회고. “이런 가운데 서울대 장세희 교수와 이계준 교수, 과학기술처 경종철 국장 등을 중심으로 기초연구교수협의회를 구성했다. 교수협의회는 과학기술처로부터 5000만원을 지원받아 전국을 돌며 많은 토론을 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과학두뇌가 희망이다)

과학기술처는 의견 수렴을 토대로 입법 전략을 다시 수립했다.

과학기술처는 우선 기초과학육성법안 명칭을 기초과학연구진흥법으로 수정했다. 지원 대상도 모든 대학, 모든 학과의 기초연구 분야로 확대했다.

그해 6월 과학기술처는 기초과학연구진흥법안을 마련했다. 이상희 장관은 법안을 가지고 정원식 문교부 장관을 만나 사전 협의를 했다.

과학기술처는 이후 문교부와 법안을 공동 발의키로 했다. 그해 8월 과학기술처와 문교부는 기초과학연구진흥기금문제를 제외한 법안에 합의했다.

10월 24일 정부와 민정당은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과 김중위 정책조정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를 갖고 과학기술처와 문교부가 공동발의한 기초과학연구진흥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국무회의는 11월 15일 기초과학연구진흥법안을 의결하고 11월 21일 국회에 제출했다.

11월 27일 국회 경제과학위원회는 이상희 장관을 출석시켜 법안 제안 설명을 들었다.

이상희 장관은 제안 이유로 “기초과학연구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창조적 연구 역량을 배양하고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해서 과학기술 선진국을 지향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과학위원회는 이날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원회는 기초과학 연구가 현실성이 있는지 등에 의문을 표시하며 교육부 장관과 차관이 직접 법안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과학기술처 최영환 차관과 실장·국장·과장 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법사위원회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해 의결했다.

이상희 장관의 생전 증언. “과학기술은 정권에 따라 쉽게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법치(法治)로 가야 합니다.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의 법제처와 같습니다.”

이 법안은 12월 19일 오후 2시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김재순 국회의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기초과학연구진흥법안을 상정합니다. 경제과학위원회 허만기 의원 나오셔서 심사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만기 의원이 단상으로 나와 경과보고를 소상하게 했다.

“첫째 이 법은 기초과학 연구의 진흥에 관해 다른 법률보다 우선합니다. 정부는 기초과학연구정책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기초과학연구 진흥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장은 이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둘째 정부는 연도별 기초과학연구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연구 과제를 선정해서 대학과 교수 등에 연구를 의뢰할 수 있게 했습니다. 셋째 기초과학 연구 기반 조성에 필요한 연구기기와 학술 문헌, 정보 등의 공동 활용을 위해 기초과학연구 지원기관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넷째 기업이나 개인이 대학 부설연구소 설립을 지원하거나 대학연구시설 지원, 대학연구장학금 지원 등을 위해 출연할 경우 조세 일부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초과학연구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수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초과학연구정책심의회의 위원장은 부총리에서 국무총리로 격상하고 위원은 경제기획원 장관, 문교부 장관, 상공부 장관, 동력자원부 장관, 체신부 장관, 과학기술 장관과 기초과학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가운데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이 문교부 장관과 협의해서 제청하며 국무총리가 임명 또는 위촉키로 했습니다. 또 기초과학연구진흥실무위원회 위원장은 과학기술처 차관이 맡도록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 최종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인물을 참조해 주시고, 경제과학위원회에서 심사보고한 대로 의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재순 의장이 의원들을 향해 물었다.

“기초과학연구진흥법에 대해 경과위원회에서 수정한 부분과 기타 현안에 대해 이의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가결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는 이 법안을 12월 26일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12월 30일 법률 4196호로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을 공포했다. 기초과학연구진흥을 위한 힘찬 출발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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