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동동’ 예비입주자들, 눈물의 ‘마피’까지…대출 옥죄기 부작용

조문희 기자 2024. 11.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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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금대출에 정책대출도 규제 사정권, 믿었던 2금융권도 “안 돼요”
신축 입주 앞두고 ‘날벼락’…연말까지 후폭풍 이어질 듯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투기도 아니고 투자도 아닙니다. 평생 내 집 한 칸 없다가 이제 아파트라는 게 생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대출을 막는답니다. 집단 대출을 규제하는 것은 서민의 목숨 줄을 끊는 행위입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지난 10월31일 올라온 글이다. 일주일 동안 12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의 요지는 최근 금융 당국 주도로 강화된 대출 규제의 문턱을 낮춰달라는 것이다. 신축 입주를 앞두고 집단대출이 막혀 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청원인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국회 앞에서 분신 보도가 나오면 그때 움직이는 척 하겠느냐"고 강하게 주장했다.

청원인의 사례뿐만 아니다. 신축 입주가 시작됐거나 입주를 앞둔 일부 단지 커뮤니티에서는 대출을 받지 못해 입주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공유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와 집값 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본격 시작된 대출 옥죄기의 후폭풍이 실거주에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평가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 모습 ⓒ 연합뉴스

대출 막히자 '급매' 속출…'마피' 최대 1.1억 붙은 단지도

5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는 분양권보다 저렴한 가격에 매물을 내놓은, 이른바 '마이너스 피'가 붙은 매물이 나왔다. 이 단지에서 '급매'로 나온 매물은 11월 초까지 4건이다. 분양가보다 최대 2000만원 저렴하게 호가가 형성됐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실거주를 하려다가 기존 집도 안 팔리고 대출이 안 나오니까, 눈물을 머금고 '마피'를 붙여서 내놓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단지는 지난 3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입주 기간은 다른 말로는 잔금 납부 기한이다. 입주 전까지는 중도금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납부하다가, 입주 지정 기간이 다가오면 잔금대출로 갈아타 잔액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기한 내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분양자는 연체료를 내야 한다. 신용도는 크게 깎이고, 이마저도 어렵다면 위약금을 내고 계약을 포기해야 한다.

문제는 최근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로 잔금대출 한도가 크게 깎이거나 이율이 지나치게 높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잔금대출이 될 때까지 중도금 대출을 연장하며 버틸 수 있으나, 이 역시 어려운 분위기다. 이 단지 수분양자로, 중도금 연장을 알아봤으나 거절당했다는 A씨는 "대출 연장이 안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단지의 사정만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대출 한도 축소와 대출 규정 강화 때문에 신축 아파트 계약 자체를 포기하거나, 돈줄이 막혀 급하게 분양권을 파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 전용 84㎡는 분양가 11억2299만원보다 2000만원 낮게 나왔다.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동일센타시아'는 전용 42㎡가 마피 5500만원으로 4억70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경기도 광명시 '트리우스광명' 전용 84㎡도 마피 2500만원이 붙은 10억9520만원대 매물이 나왔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역자이르네' 전용45㎡은 마피가 무려 1억1000만원이 붙었다. 주로 분양 당시부터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던 단지들 중심으로 마피 매물이 늘어났다는 게 업계의 주된 평가다.

서울 시내의 한 저축은행 외벽에 붙은 담보대출 관련 안내문 ⓒ 연합뉴스

믿었던 2금융권마저…"대출 규제 최소 연말까지 지속"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통상 시중은행보다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낮은 편이지만, 최근 들어 2금융권의 대출 규제도 강화될 분위기라서다. 당국은 2금융권에도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받아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사실상 대출 총량 규제를 의미하는 이 조치는 당초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운영됐으나, 이를 2금융권까지 확대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더 옥죄겠다는 취지다.

대출 목표치 제출 조치가 시행되면 새마을금고와 단위농협 등 2금융권의 대출은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에서 금리 인상과 만기 축소,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중단 등의 조치로 대출 문턱을 높였던 것처럼, 2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2금융권 대출 증가분의 상당수가 잔금대출인 점을 고려하면, 향후 관련 대출을 받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당장 새마을금고는 5일부터 집단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한시적으로 신규 중도금 대출 전건을 중앙회에서 사전 검토하는 방안을 실시하기로 했다.

잔금을 치르지 못해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대안도 현재로선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수분양자가 전세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면 세입자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받는데, 현재 5대 은행 중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는 곳은 하나은행뿐이다. 당초 10월까지 조건부 전세대출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국민은행 등은 "아직 규제를 풀기엔 이르다"며 제한 조치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소 연말까지는 대출 규제 기조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민 대상 정책 대출도 손보기로 했다. 대출 규제로 주춤해진 은행권 대출 규모와 다르게 정책 대출 규모가 계속 확대되자, 돌연 한도 축소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실수요자 피해를 고려해 규제에 지역별 차등화를 둔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매수세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도 축소에 따른 피해 사례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디딤돌 대출 등 정보 ⓒ 연합뉴스

내년 초엔 대출 총량 '리셋' 될까? "글쎄"

일부 단지에서는 입주 시기를 최대한 미루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통상적으로 해가 바뀌면 은행의 대출 총량이 리셋된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내년 초에는 금융권 전반의 가계대출 관리 여력이 커져 대출 한도도 늘어날 것이기에, 입주 시기를 늦춰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윤지해 부동산 R114 수석연구원은 "연초가 되면 은행권이 대출 총량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계절적 메커니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이달 1만2000여 세대의 입주가 시작되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에서 이 같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이 단지의 공식 입주기간은 오는 11월27일부터 2025년 3월31일까지다. 정해진 입주 기간 안에서는 입주자 뜻대로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 만약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분양자가 많다면 건설사 차원에서 입주 시기를 더 연장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단지의 입주 시기가 내년 3월을 넘어 상반기 내내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의 강력한 대출 규제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광수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대출 규제는 좋고 나쁨을 떠나서 불가피한 것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임계치에 다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규제 조치는 계속될 것"이라며 "실거주자가 입는 가장 큰 피해는 대출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집값이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주택 시장 관망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금리나 대출 규제에 따른 영향력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여 그때까지 관망세가 유지될 것"이라며 "그 이후 집값 향방은 금리나 대출 규제 요인의 영향력을 살펴본 뒤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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