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처벌, 범죄는 감경?”…‘주취감형 폐지’ 주장 고개 드나

전문가 “주취감형 폐지보다 우선 처벌이 강화돼야”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 1. 전남 순천에서 여고생이 처음 보는 남성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박대성(30)은 지난달 26일 오전 1시께 순천시 조례동에서 길을 걷던 여고생을 쫓아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박대성은 경찰에 "사건 당일 가게에서 홀로 소주 4병을 마셨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경찰은 주취감형을 노린 계획 진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지난 3일 오후 9시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귀가하는 여대생을 무차별 폭행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만취 상태였던 남성은 여대생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확인됐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남성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남 순천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박대성 ⓒ연합뉴스

술 마시고 범행하는 '주취 범죄'가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5일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강력범 가운데 주취 상태로 확인된 비율은 살인범 37.5%, 방화범 39.0%, 폭력 25.3%, 성폭력 19.0% 등으로 집계됐다.

주취감형이란 술에 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을 때, 정상적인 사리분별이 어려운 상태임을 참작해 형을 감형해주는 제도다. 대한민국 형법 제10조 2항에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범죄자들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실형을 감면 받기 위해 술에 취했다는 핑계를 대며 심신장애를 주장한다. 실제로 감형 받은 사례가 있다. 음주로 인해 심신미약이 인정된 대표적인 예가 조두순이다.

주취감형을 받은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한 2020년 12월12일 오전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앞에서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바닥에 누워 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조두순은 2008년 8세 여아를 납치·강간했다. 당시 검사는 "조두순의 죄질이 무겁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조두순은 재판에서 주취 상태를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나이가 많고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이 아닌 12년형을 선고했다. 

"주취 범죄 오히려 엄중 처벌해야"

주취감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주취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시민들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쥐여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주취 범죄 관련 처벌부터 강화해야 된다고 조언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우리 사회가 주취 범죄에 대해 관대하게 처벌했던 관행들을 서서히 무너뜨려야 한다"며 "고의범(고의로 행한 범죄)으로 처벌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의범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상습 범죄가 돼 가중 처벌이 되는 만큼 주취 범죄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전까지는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른 뒤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주취 감경을 해줬지만, 조두순 사건 이후부턴 (범죄) 감경을 안해주는 추세다. 주취감형이 잘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도 하나의 예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음주 문화부터 바뀌어야 되지 싶다. 술에 관대한 문화부터 개선돼야 범죄 또한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