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로 털에 붙은 기생충 고르다가…인류는 키스를 시작했을까

김지숙 기자 2024. 11. 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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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인류의 입맞춤이 유인원들의 그루밍 행동에서 이어졌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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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도 우리 집 강아지가 제 입술과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어요. 그러고 보니 인간도 가족, 연인, 친구의 얼굴에 뽀뽀부터 키스까지 여러 입맞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왜 입맞춤을 하게 된 건가요.

A. 입맞춤은 수천 년 동안 여러 대륙과 문화에서 ‘특별한 애정’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여겨져 왔죠. 로맨틱한 입맞춤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2800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도 나타나고, 일부 연구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1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와 침을 교환하고 서로의 구강 미생물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문명이 형성되기 전부터 입맞춤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으니, 정말 오랜 역사를 지닌 행동인 셈입니다.

이렇게 입술이나 주둥이를 상대방에게 갖다 대는 행동은 인간뿐 아니라 영장류, 조류, 해양동물에서도 나타납니다. 미국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박사는 자신의 저서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1989년)에서 침팬지와 보노보가 화해의 수단이나 사회적 유대 강화, 성적 친밀감 표현 등으로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앵무새나 비둘기, 돌고래도 서로의 부리를 부딪치거나 맞대는 행동을 하는데, 이 또한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입이나 부리를 맞대는 것이 인간의 입맞춤(키스)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같은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난해 영국과 덴마크 연구진들은 기원전 1800년 무렵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서 남녀가 성적인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영국 대영박물관 제공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입맞춤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동안 연구자들은 생물학·행동학·문화인류학에 근거해 다양한 가설을 제시했는데요, 입맞춤이 상대의 사회적 정보를 얻기 위한 냄새 맡기나 수유 행동 혹은 부모가 아기에게 음식을 씹어서 전달하는 행동에서 진화했다고 추정해왔습니다.

지난달 17일 국제학술지 ‘진화인류학’에는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더 소개됐는데요, 바로 인류의 입맞춤이 유인원의 ‘그루밍’에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루밍(Grooming)은 유인원을 포함한 영장류가 스스로 혹은 상대의 털을 고르는 행동을 말하는데요, 일차적으로는 털 속에 있을 수 있는 기생충·이물질·각질 등을 제거하는 행동이지만, 사회적 결속을 다지거나 긴장 완화가 필요할 때, 갈등을 해소할 때도 이러한 행동을 보입니다.

영국 워윅대 심리학과 아드리아노 라메이라 부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입맞춤의 기원이나 진화적 기능을 설명한 기존 가설들은 입맞춤이 어떻게 현재의 형태로 진화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냄새 맡기나 젖 먹이기, 먹이 건네기 등의 기존 가설은 입맞춤의 형태, 맥락 및 기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랑우탄이 친구의 입에서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입맞춤의 기원에 대한 기존 가설은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보기 위한 냄새 맡기, 어미의 수유 행동 혹은 먹이 건네주기에서 이어졌다는 것 등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인류의 입맞춤이 입술 접촉과 흡입 동작(형태)으로 이뤄지고, 다양한 연령과 성별 개체 간(맥락)에 나타나며, 가까운 대상이나 친족 관계에서 유대감을 표현(기능)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기존 가설들은 형태적 측면에서부터 들어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냄새 맡기는 입술은 내밀지만, 흡입 동작을 하지 않고, 먹이 건네기는 입술은 내밀지만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는 동작을 하게 된다”면서 “수유는 형태적 측면에서 좀 더 유사하지만 왜 이 행동이 (가슴에서 입으로) 신체의 다른 부위로 옮겨갔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설명했습니다.

라메이라 부교수는 유인원의 그루밍이 입맞춤의 형태, 맥락, 기능을 모두 충족하는 행동이라고 봤습니다. 유인원들은 그루밍할 때 처음엔 상대에게 다가가 입술로 털을 고르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털에 붙어 있는 기생충이나 이물질을 흡입하는데요, 이 동작이 이어져 입맞춤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라메이라 부교수는 입과 입술은 촉각이 가장 민감한 부위 중 하나로 “추가적 쾌락 효과”가 입맞춤을 유지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는 “(고생대 기후변화로) 유인원이 숲에서 개방된 공간으로 서식지를 바꾸면서 기생충 감염에 대한 위험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육상 유인원이 인류로 진화하며 점차 털은 잃게 되었겠지만 기생충이나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그루밍의 마지막 행동은 오래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루밍의 위생적 역할은 점차 줄어든 반면 애정을 표현하는 사회적 기능은 유지되면서 마지막 흡입 단계가 입맞춤으로 이어졌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즉 ‘입맞춤의 역사’가 유인원이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 700만년 전, 이미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입과 입술은 촉각이 가장 민감한 부위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러한 “추가적 쾌락”이 입맞춤의 유구한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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