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째 무급…TBS의 미싱은 그래도 돌아가네

정민경 기자 2024. 11. 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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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TBS의 '문 안 닫을 결심' 이들은 왜 아직도 TBS에 남아있나
생방송 중인 최일구 아나운서 "침몰해 가는 느낌이지만 같이 할 것"
편성 PD없어 편성일 하는 제작 PD "편집 아르바이트로 생계 이어"
월급 못 받은 TBS 건물 관리인들 "방송사 일 자부심 느껴"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31일 최일구 진행자가 TBS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지난 10월31일은 TBS 구성원들에겐 월급이 아예 나오지 않은 지 두달이 더 지난 날이었다. 또 이성구 전 대표대행이 9월24일 결재한 <재단 직원 전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예고 계획안>에서 전원 해고가 예정된 날이었다. 그러나 이성구 전 대행은 사퇴했고, 해당 계획안은 무효화되어 TBS 직원들은 여전히 대부분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31일 TBS에 머물며 여전히 이 장소에서 방송을 만드는 TBS 구성원들을 만났다.

현재 TBS 직원들은 얼마나 남았고,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TBS는 30일 추가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았다. 이미 50여 명이 무급휴직을 하고 있었고, 10여 명이 추가돼 총 60여 명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100여 명은 시간 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TBS의 240여명 직원들 가운데 180여명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4주차 편성표 기준, 생방송은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 정도이고 자체 본방송으로는 'TBS 영상 아카이브 한강의 기록', '시민영상 특이점', '서울 마블 스페셜', '서울, 도시 정원을 걷다', '5분 다큐 사람 스페셜' 등이다.

10월25일은 월급날이었다. 월급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6월부터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일부만 지급됐다. TBS 직원들은 “월급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것과,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체감상 정말 다르고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TV 제작부의 한 관계자는 “월급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좋겠다”며 “한 달 정도야 어떻게든 버텼다. 이제 두 달 지나고 세 달 째가 되어가니까 체감하는 게 정말 다르다. 특히 언제 지급이 된다는 기한도 없기 때문에, 많은 동료들이 무급 휴직을 하고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벌어야 살잖아. 다들 뭘 하면서 사는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공사판 간 친구도 있고. 쿠팡 배달을 하는 동료도 있다. 방송 쪽 전문성을 살려서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도 있다. …매일 방송하는 시간대가 있으니까 매일 나오는 사람도 있고 요일별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 방송은 나가야 하니까.”

▲서울 상암동 TBS의 1층 오픈 스튜디오의 모습. 사진=정민경 기자.
▲TBS 1층 오픈 스튜디오에서 '짤짤이쇼'를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TBS의 스튜디오들을 돌아봤다. 1층 오픈 스튜디오는 바깥과 연결되어 있어서 행인들도 자유롭게 방송 공간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곳에는 TBS '짤짤이쇼'를 만들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또 다른 스튜디오엔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곳엔 '우리 동네 라이브'를 방송하던 흔적이 있었고, 지난 9월27일 방송한 큐시트가 놓여 있었다. 다른 스튜디오들도 먼지가 쌓여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작가실, 분장실 역시 불이 꺼져있고 적막만 흘렀다. 먼지 쌓인 시설을 둘러 본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 김선환 비대위원장은 “이런 스튜디오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혈세 낭비가 아니고 무언가 싶다. 빨리 TBS가 방송을 재개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동네 라이브'를 촬영하던 스튜디오의 모습. 사진=정민경 기자.
▲20년차 TBS 기자인 김선환 공동비대위원장이 방치된 TBS 방송 스튜디오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두 달 째 월급 못 받은 TBS 건물 관리인들 “방송사 일 자부심 느껴서”

스튜디오 문을 함께 여닫고 생방송 출연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건물 관리인 이장수, 임우진 씨도 마찬가지로 두달 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비슷한 급여를 주는 다른 건물로 취직할 수도 있었지만 TBS에 남았다고 했다. 이장수 씨는 “2020년 입사했고 5년 정도 건물 관리를 했다”며 “출입자 통제, 출연자들 안내, 화제 예방 체크와 도난 방지, 에너지 절약, 조명 관리, 민원 안내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한 민원전화를 받고 그는 매우 화가 났다고 한다. 그는 “야간에 'TBS 망한다는데 잘됐다'며 비아냥 거리는 전화가 왔다”며 “평소에 이런 비슷한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 물론 'TBS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에겐 고맙다”고 전했다.

그는 “건물 관리인을 하기 전 자영업을 하면서 TBS를 즐겨들었다”며 “정치인들 마음에 들고 안 들고에 따라 방송을 폐국시키려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얼마 전 TBS를 지키자는 시위에서 함께 피켓을 들었다. 사실 나이가 들고 머리도 허얘서 피켓 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남들의 시선도 신경쓰인 게 사실이다. 그래도 TBS가 정상화되고 함께 있는 직원들이랑 계속 일하고 싶어서 비 맞고 피켓도 함께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물관리인 임우진 씨 역시 “원래는 5명이었는데 3명은 다른 건물로 가고 2명이 남았다”며 “다른 곳에서도 건물 관리를 해봤지만 방송사는 처음인데 마음에 들었다. 생방송을 할 수 있게 돕고, 지원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 TBS에 희망을 보면서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달 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TBS의 건물 관리인들. 왼쪽이 이장수 관리인, 오른쪽이 임우진 관리인이다. 사진=정민경 기자.

여전히 생방송 중인 최일구 아나운서 “침몰해 가는 느낌이지만 같이 할 것”

조용했던 TBS 스튜디오에 활기가 돋는 건 오후 2시부터 4시다.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 생방송이 시작하면 TV에서도 함께 방영된다. 10월 마지막주 큐시트를 살펴보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은 이 방송이 유일하다. 해당 방송은 협찬이 있기 때문에 소정의 제작비(외부 출연자 출연료 등)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비용도 최소한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이날 1부 방송을 끝내고 2부 방송 직전 5분 정도의 휴식을 가지고 있던 최일구 진행자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최일구 진행자는 “2017년 10월부터 만 7년을 해왔기 때문에 다같이 일하는 우리 후배들이랑 같이 계속 하는 거지”라며 “나야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내 후배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고 또 후배들도 나를 선배로 생각해주니까, 어쩌면 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해 가는 느낌이지만 갈 데까지, 끝까지 나는 같이하겠다는 자세로 하고 있지”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 진행자는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TBS 어떻게 될지 내가 알 수는 없어서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있지만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서둘러 생방송 부스로 돌아갔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가 생방송되고, TV에서도 보이는 라디오를 방영한다. 사진=정민경 기자.

편성 PD 없어 제작 PD가 편성 “편집 아르바이트로 생계 이어”

작가실이나 분장실, 개인 편집실 등도 거의 비어있었지만 1~2군데 편집실에서는 여전히 PD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김수인 TBS 제작 PD는 이날 오후 편집실에서 편성을 하고 있었다. 김 PD는 “예전에 저희가 찍었던 '한강의 기록'이라는 프로그램을 현재 방송하고 있다”며 “제작비가 없는 현실에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며 지내왔지만 이제는 무급 휴가 인원들이 많아지면서 제작은 거의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전했다. 김 PD는 “현재는 TV에 '보이는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방영하고 '한강의 기록' 등 아카이브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며 “지금 편성 PD가 없는 상황이어서 제가 편성 PD일을 배워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인 PD는 “사실 촬영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촬영의 특성상 비규칙적인 스케쥴이어서 주 2~3회 TBS 편성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했다. 현재는 편집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월세도 내고 관리비도 낼 수 있다. 다른 PD들도 '다음 달엔 어떻게 해야할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TBS의 비어있는 작가실. 제작비가 떨어진 뒤 프리랜서 작가들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사진=정민경 기자.
▲31일 개인편집실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김수인 제작 PD. 편성 PD가 없는 상황에서 편성 일을 배웠다고 한다. 사진=정민경 기자.

TBS 아나운서인 이민준 공동비대위원장은 “많은 프로그램들이 중단됐지만 1시간 1번 교통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리포터들이 순번을 짜서 진행했지만 이제는 리포터들이 많이 줄어들어 아나운서들도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TBS는 서울시민에게 교통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공적의무가 있는 방송사다. 현재 회사에 남아있는 리포터와 아나운서들은 임금도 없이 그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 프로그램 등은 음악만 내보내거나, 생방송은 최대한 줄였지만 실시간으로 변하는 교통정보의 경우 미리 녹음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TBS의 '문 안 닫을 결심' 이들은 왜 아직도 TBS에 남아있나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 제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도 있었다. 김옥랑 제작 PD는 TBS의 현재 이야기를 담은 '문 안 닫을 결심'이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 10월25일 티저를 내보내고 11월1일 첫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TBS 25년차 송정애 아나운서가 TBS를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TBS의 유튜브 콘텐츠 '문 안 닫을 결심' 중 갈무리.

송 아나운서는 해당 콘텐츠를 통해 “아나운서로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다들 방송이 하고 싶어서 남아있는 사람들인데 다른 분들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며 “제가 방송을 하기 전에는 계속 음악 방송이 나간다. 제 목소리가 나갈 때 청취자분들이 '어 사람 왔다'며 쑥 들어오시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10월15일 방송에서 송 아나운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은 서울시청 앞에서 TBS 직원들이 피켓 시위를 한 날이었다. 이날 방송 '서울플러스'의 클로징으로 김별희 PD는 최유리의 '숲'을 선곡하고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 송 아나운서는 이 노래를 설명하면서 “시민의 방송 유튜브로 오늘 집회 현장을 보실 수 있다. 오늘 끝 곡은 최유리의 '숲'이다. 저희가 청취자 분들의 숲이 되어드리고 싶고 청취자 분들도 저희의 숲이 되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선곡”이라고 말하면서 흐느꼈다.

송 아나운서는 “(현재 TBS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신 건 사실인데, 전하고 싶어서 집회를 한 날에도 큰 마음 먹고 (이야기를 했다)”며 “그날 방송하는데 시민들이 '집회가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주시는데 너무 고마웠다. 우리가 절벽 앞에 서있는 상황이라 더 해드리고 싶은 게 많은데 왜 그만 두라고 하는지,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희망 고문을 당한 것이 2~3년이 됐다. 이 무기력이 일상화된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지금 라디오 듣는 분들은 사람이 그리워서 들으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음악만 나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청취자분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TBS 유튜브 '문 안 닫을 결심'의 첫 에피소드에는 25년차 TBS 송정애 아나운서의 이야기가 담겼다. 사진출처='문 안 닫을 결심' 갈무리.
▲31일 개인 편집실에서 유튜브 '문 안 닫을 결심'을 제작하고 있는 김옥랑 TBS PD의 모습. 사진=정민경 기자.

해당 콘텐츠를 제작한 김옥랑 PD는 이날 TBS 편집실에서 “제작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제안을 했는데 다들 힘든 상황에서도 선뜻 다 하겠다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김 PD는 “어려울수록 동료애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7시 생방송을 매일하고 있는 송정애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TBS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왜 TBS에 남아있느냐는, 김 PD가 아나운서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번에는 김 PD에게 던졌다. 김 PD는 “우리는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다. 방송을 하고 싶어서 남아있다”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 정말 힘들고 절박한 벼랑 끝에 서 있지만 TBS를 지키고 싶고 방송을 하고 싶은 마음은 공통적이다.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늦은 것 같다. TBS를 어떻게 살릴지…폐국만은 막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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