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에 갇힌 尹 대통령… ‘대국민담화’로 위기 정면돌파 구상[허민의 정치카페]

허민 기자 2024. 11.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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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의 정치카페 - 대통령 7일 대국민담화
尹, 김여사·명태균 논란에 임기단축 압박 직면… 보수 공멸 비극 막는 지도력 발휘 절실
“내게 돌을 던지시오!” DJ의 돌파력 필요… 반성과 비전 제시로 위기를 기회로 돌려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임기 단축과 하야·탄핵 구호가 난무하는 금단의 땅에 서 있다. 잿빛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에 갇힌 윤 대통령이 꺼낸 카드는 대국민담화. 윤 대통령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담화’ 결정 막전막후

윤 대통령은 7일 오전 10시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김건희 여사 논란’ 등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대통령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임기 반환점을 맞아 지난 국정 운영의 성과와 향후 정책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1문 1답에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현안들에 대해 소상하고 구체적으로 답할 계획이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논란 등에 대한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밝히겠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A 씨는 5일 전화통화에서 “대국민담화를 한다는 방침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고, 해외 순방 이전이냐 이후냐를 놓고 고심해 왔다가 이전에 하기로 했다”며 “당의 요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대통령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순방 전 담화’ 결정에는 국정 지지율 추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B 씨는 통화에서 “국정 지지율을 20%대로 올리겠다는 건 너무 소극적이고, 30%대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마음으로 담화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B 씨는 “윤석열 정부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는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겠다는 것을 내보여야 하고, 그러려면 ‘앙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생각하는 담화의 ‘앙꼬’는 단연 김 여사 관련 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외교·의전 이외의 대외활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동안 명품백·명태균 논란 등으로 국민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 의향’을 표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여사는 7일 대국민담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3대 요구 중 ‘여사 라인’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잘잘못이 드러나면 필요에 따라 인사를 할 것이며, 국면 전환을 위한 인적 쇄신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위기와 맞짱 뜨기

윤 대통령이 작금의 위기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지난달 22일 부산 범어사를 방문해 사찰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면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 친윤 의원들은 “이때 이미 어떤 형태로든 국정 운영의 기조와 방향에 대해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친윤 C 의원은 “윤 대통령의 ‘돌 맞을 각오’는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했다. ‘순방 전 담화’ 결정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돌 맞을 각오’는 민주화 시대의 개척자 김대중(DJ)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13대 대선을 앞둔 1987년 11월 15일 대구 두류공원 유세. DJ가 단상에 오른 30여 분간 돌과 유리병, 계란이 마구 날아들었다. DJ를 수행했던 이들이 단상을 에워싸고 날아오는 돌을 막기에 바빴다. DJ가 갑자기 이들을 밀쳐내고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내게 돌을 던지시오!” 현장에 있었던 설훈 민주당 의원의 회상. “희한한 일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더 이상 돌이 날아오지 않았다. 감히 던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설훈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다’)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생한 목격담도 있다. “두류공원 집회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연사로 나온 문익환이 ‘지역감정은 수치’라고 외쳤지만 군중 사이에서 욕설과 고함이 터지고 돌멩이가 날아왔다. 이어 등단한 김대중에게도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김대중은 끝까지 연설을 했다.”(이희호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

지도자는 위기 상황에서 몸을 던져야 한다. 두류공원 에피소드는 DJ를 전설로 만들었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한 그의 용기는 10년 뒤 1997년 15대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윤 대통령의 “돌을 맞고 가겠다”와 DJ의 “내게 돌을 던지라”는 위기와 맞짱 뜨겠다는 결기를 내보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포비든 그라운드

지금 국회와 거리에서 윤 대통령 임기 단축과 하야·탄핵 구호가 난무한다. 11월을 ‘김건희 특검의 달’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서울역 장외집회를 계기로 김 여사를 고리로 한 대여 공세에 속도를 높이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오는 9일 정권 규탄 장외 집회를 민주노총 등 친야 단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앞으론 친야 시민사회·재야 단체들과 공동으로 정권 임기 단축 여론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 의원들이 지난 1일 ‘임기 단축 개헌 국회의원 연대 준비모임’을 발족해 활동에 돌입했다.

집권여당 한동훈 대표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타격전을 벌이는 중이다. 한 대표는 4일 당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직접 사과, 대통령실 참모진 개편, 쇄신과 개각, 김 여사의 대외활동 즉각 중단 등을 공개 요청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고 했다. 마치 윤 대통령이 ‘금단의 땅’에 갇힌 상황이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 영국군과 독일군은 참호전을 펼쳤다. 영국군 아서 윌킨스 원사는 독일 진지로 진격하다 양측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에 갇힌다. 기관총이 난사되고 포탄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포비든 그라운드, 금단의 땅이다. 윌킨스는 여기에서 동료 리처드와 신병 올리어리를 만난다. 리처드는 한쪽 다리를 잃었고, 올리어리는 겁에 질렸다. 윌킨스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무인지대를 빠져 아군 진지로 돌아가려 사투를 벌인다. 윌킨스가 말한다. “우리는 함께 돌아갈 거야. 금단의 땅에서 너를 한 발짝씩 끌고 나가야만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널 절대로 여기 놔두지 않아.”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명태균 등 논란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여당과 정부를 모두 이끌고 금단의 땅에서 살아 돌아와야 한다. 국민의힘을 넘어 보수 진영 전체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비극을 피하기 위해.

◇위기와 기회

윤 대통령은 이번 담화를 위기 극복을 넘어 기회의 창조로 연결하려 준비한다고 한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현안과 맞짱 뜨며, 여권의 통합을 기하고 민심을 얻어 금단의 땅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포비든 그라운드’(Forbidden Ground)는 영국군과 독일군의 참혹한 참호전을 소재로 2014년에 만든 ‘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영화. 사전적 의미는 금단의 장소, 토의해서는 안 되는 문제.

‘두류공원 유세’는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87년 11월 15일 김대중이 대구의 두류공원에서 했던 집회. 중앙 단상으로 습격하려는 괴한들의 폭력과 극단적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유세로 기록.

■ 세줄 요약

‘담화’ 결정 막전막후 : 대통령은 이미 ‘대국민담화’를 하기로 결심한 상태에서 해외 순방 이전이냐 이후냐를 놓고 고심해 오다, 4일 ‘순방 전’으로 결정. 이 결정에는 국정 지지율의 추락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침.

위기와 맞짱 뜨기 : 대통령의 “돌 맞을 각오” 발언은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이것이 ‘순방 전 담화’ 결정의 단초. 이는 1987년 대구 두류공원 유세에서 DJ가 “내게 돌을 던지라”고 외친 것을 연상케 함.

포비든 그라운드 : 대통령은 지금 범야권의 임기단축·하야·탄핵 구호가 난무하는 금단의 땅에 갇혀. 대통령이 위기를 피하지 않고 현안과 맞짱 뜨며, 여권의 통합을 기하고 민심을 얻어 포비든 그라운드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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