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노병은 죽지 않는다'…40년 만에 소총 들고 뛴 5060
5060 경계병론엔 "국방은 신성…일자리 창출 차원 안돼"
"시니어 아미 94명은 2024년 11월 4일 예비군 훈련 체험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예비역 여군 부사관인 그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정신력은 병사들 못지않다"라고 훈련 의지를 다졌다. 이 씨가 신고를 마치자 훈련병들 사이에선 박수갈채와 함께 "아직 죽지 않았네" "수고했어요" 등 격려가 쏟아졌다.
고 단장은 "선배님들의 나라를 위한 마음에 존경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뜻깊은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훈련 중 안전에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은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민간 예비군 단체 '시니어 아미(Senior Army)'가 창설 이후 처음으로 정기훈련에 임하는 날이었다. 유사시 최일선에서 싸우기 위해 평소에 꾸준히 관리해 온 체력·건강을 군 위탁 예비군 훈련을 통해 점검하는 기회이다.
이날은 93명의 회원이 훈련에 참가했고, 3명의 참관단도 있었다. 이날 훈련에 참가한 회원 중 최고령자는 80세였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장구류를 수령하는 시니어 아미 회원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후배 장병들의 안내를 받아 철모를 쓰는 게 여간 설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군 호크 유도탄 부대에서 복무한 뒤 48년 만에 군부대를 찾았다는 이교성 씨는 "국가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훈련에 참여하게 돼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날 훈련은 △목진지전투 △영상모의사격 △시가지전투로 구성됐다. 훈련 참가자들의 체력과 안전 등을 감안해 정규 과정과 비교해 절반 수준의 강도로 훈련이 진행되는 것이다.
회원들은 목진지전투 중 대인용 지향성 산탄 지뢰인 KM-18A1 '클레이모어'를 터뜨린 뒤 모형 수류탄을 투척, 연이어 마일즈 장비(다중 통합 레이저 교전 체계)가 탑재된 M-16 소총을 쏴 대항군 5명을 격퇴했다.
훈련 중 회원들이 땀을 훔치기 위해 이따금 철모를 벗을 땐 하얗게 센 머리카락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실내에서 이뤄진 영상모의사격 땐 수십 년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몸이 기억하는 듯 자연스럽게 소총을 어깨에 밀착시키는 자세로 훈련에 임한 회원들이었다. 명중률은 다소 떨어졌지만 개인당 총 140여 발 사격에도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5060세대가 체력이나 순발력이 젊은 세대에 비해 떨어질 순 있지만, 지구력이나 상황판단 능력 면에선 더 뛰어날 것이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분대장을 맡은 이덕우 씨(72)는 "한반도 유사시 꼭 전장이 아니더라도 후방에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5060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전체 상황을 관망할 수 있는 능력이나,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좋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마일즈 장비를 착용한 채 실시한 시가지전투였다. 10여 명씩 청군과 황군으로 나뉜 회원들이 전투에 앞서 '워게임'을 할 땐 실제 전쟁 지휘부처럼 작전을 짜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건물 3층에 자리해야 하는 4명의 저격조를 선발하는 과정에선 한 분대장이 "계단이 많으니 가장 젊으신 분들이 올라갑시다"라고 의견을 내자, "나 52" "난 60인데"라고 손을 들며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도 보였다.
회원들은 전투 개시 신호가 떨어지자 은폐·엄폐해 사격을 하거나 몸을 낮춘 채 상대방 진지로 접근하며 교전을 벌이는 등 현역 못지않은 실력을 뽐냈다. 시가지전투 결과 혼자서 상대방 4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회원도 있었다.
시니어 아미는 △유사시 최일선에서 싸우고 △평시 체력·건강 관리와 함께 유사시 동원에 대비해 소집점검 훈련을 하며 △단체의 자원(資源) 기록을 국가에 제출하고 적재적소에 동원해 줄 것을 자원(自願)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6월 창설 이후 1년 3개월 동안 전국에서 모두 2000명이 넘게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윤승모(63) 시니어 아미 대표는 "시니어 아미 회원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나라가 부르면 헌신한다는 우리의 의지를 다지고, 그것을 실제 실천함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게" 이번 훈련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61만 명이던 군 병력이 불과 7년 만에 50만 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앞으로 인구절벽이 심화할수록 병역자원 또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5060세대에게 경계병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대표는 "국방은 신성한 일이다. 시니어 세대가 나라를 위한 애국헌신의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라며 "노인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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