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닌 손짓으로 대화… 느려서 더 소중한 사랑 담았죠”[영화 ‘청설’]
#그는 고민이 많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도시락 가게 일이라도 도우라는 엄마의 성화에 나선 배달길에서 동생과 수어 대화를 하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항상 바쁘다. 수영하는 동생이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게 곧 그녀의 꿈이다. 동생 뒷바라지에 24시간이 모자란 그녀는 우연히 만난 그에게 마음이 간다.
둘은 26세 동갑이다.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영화 ‘청설’(6일 개봉)은 청춘 로맨스가 자취를 감춘 극장가에 단비 같다.
20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은 건 6년 전(‘너의 결혼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마 중에 종종 청춘 로맨스가 등장했지만 그마저도 판타지를 섞기 일쑤였다.
장르 간 이종 배합 없이 20대 배우의 순도 100% 청춘 로맨스가 반가운 이유다.
홍경(28)이 맡은 ‘용준’은 동생에게 헌신적인 ‘여름’(노윤서)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혹여나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을지 조심스러워 한다. 청각장애인인 동생 ‘가을’(김민주)과 여름의 관계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만난 홍경은 “철없는 청춘들의 통통 튀는 로맨스가 아니다”라며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현실 때문에 아파한다”고 말했다.
청춘 로맨스는 대만·일본 영화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청설’ 역시 동명의 대만 영화(2009)를 리메이크했다. 코믹 요소가 있는 원작에 비해 마음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원작에서 꼭 가져오고 싶었던 건 단 하나, 순수함이란 가치였다”는 홍경은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지만, 그 마음이 가닿는 것은 느린 만큼 소중하잖아요. 청춘의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첫사랑의 순수함이 담겨 있어요. 금방 가치가 휘발되는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영화를 보면 현실의 홍경과 용준이 닮았을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홍경이 추천한 책(무라카미 하루키·강화길의 소설 등)으로 채운 용준의 방처럼 군데군데 그가 묻어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홍경은 “용준이 앞에서 부끄러웠던 순간이 많다”며 손사래를 쳤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두렵잖아요. 그런데 용준이는 그걸 온전히 마주해요. 저는 그때 돌아가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용준이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홍경은 자타공인 영화광이다. 좋아하는 감독을 물어보자 서슴없이 “P.T.A(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이름 약자)”라고 답했고, 최근 다시 봤던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만큼, 연기는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 마음이 닳아버리면, 영화를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으니까요. 가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늘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온 마음을 다합니다.”
노윤서(24)가 맡은 ‘여름’은 맑고 순수한 첫사랑 ‘그녀’의 전형이다. 그런데 동생 가을의 뒷바라지를 위해 쪼개기 알바(아르바이트)를 불사하고, 끼니는 거르기 일쑤다. 현실에서 붕 떠 있는 환상의 ‘그녀’는 아니란 얘기다. 지난달 31일 만난 노윤서는 “여름을 향해 진심 어린 행동을 보여주는 용준, 이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여름, 그리고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가을이 너무 예쁘고, 마음에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청설’은 기대주 노윤서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2022), 드라마 ‘일타스캔들’(2023) 등 한때 교복만 입던 그녀는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로 성인 연기 신고식을 치렀다. 노윤서는 “내 나이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며 “어려 보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꺼내기만 하면 됐다”고 웃었다.
캐릭터 중 일부가 청각장애인이란 설정 때문에 영화는 남녀 주인공의 수어 대화만 90%에 이른다. 노윤서는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물에 손이 닿는 소리, 수어를 하며 손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 같은 현장 사운드를 극장에서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착한 사람들만 있는 착한 영화다. 남녀 주인공은 물론 이들의 가족들도 상냥하고 배려심 넘친다. 여름이 동생 가을과 용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유도 배려심 때문이다. 용준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동생에겐 그만큼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 노윤서는 “서로 배려하다가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또 배려로 극복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청춘 로맨스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는 노윤서는 “‘클래식’은 네 번 봤고, ‘엽기적인 그녀’도 당연히 봤다”고 말했다. 그 영화 속에서 전지현과 손예진은 첫사랑의 아이콘이자 충무로 대표 여배우로 뻗어 나갔다. “20대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영화이면 좋겠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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