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하고 싶었어

서울문화사 2024. 11. 5. 09: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념품은 짐이다. 가뜩이나 무겁고 비좁은 여행 가방에 부담을 더하는 짐. 하지만 기꺼이 집으로 실어 나른 기념품들은 가장 진한 추억거리가 되어준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여든 기념품을 앞에 두고 여행담을 들어봤다.

QUESTION

1 언제 어디서 구입한 기념품인가요?

2 어쩌다 모으기 시작했나요?

3 평소 얼마나 자주 사용하나요?

4 나만 아는 기념품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5 나에게 좋은 기념품이란?

01

조항송 / 광고 마케팅 에이전시 ‘호라이즌’ 마케터 | <ADAPTATION - KYNE> 전시 머천다이즈

1 올해 5월 후쿠오카 도립미술관에서 구입한 <ADAPTATION - KYNE> 전시 머천다이즈.

2 올해 봄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막상 자유 시간이 주어지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때마침 후쿠오카에서 일러스트레이터 키네의 전시가 열릴 예정이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 모으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기념품을 사러 여행을 떠났다. 키네 작품은 예전부터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다. 방법은 하나뿐. 전시 머천다이즈를 사면 된다. 전시장에 들러 모든 머천다이즈를 샀다. 아, 딱 하나 안 산 게 있다. 키네 작품이 그려진 도쿄바나나. 유통기한 때문에 안 샀다.

3 액자에 넣어 집 안 곳곳에 전시해뒀다. 포스터는 감상용으로 만들어졌으니 목적대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머그잔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있다.

4 한때는 옷과 신발을 엄청 사 모았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다 지루해졌다. 내가 좋아하던 것 중 마지막까지 남은 게 일러스트다. 키네는 미소녀만 그린다. 여자만 그리는 작가는 많지만,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건 키네의 작품이다. 참고로 키네는 한 번도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다. 은근한 신비주의도 마음에 든다.

5 미쉐린 3스타 같은 기념품. 그걸 사기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기념품.

02

김성덕 / 스타일리스트 | 잡지

1 도쿄와 파리에서 구입한 해외 잡지들. 맨 위의 <아레나 옴므 플러스> 영국판은 파리 OFR 서점에서 구입했다.

2 첫 직장 생활은 잡지사 어시스턴트로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좋아했고,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는 지금도 잡지를 좋아한다. 사실 잡지가 사기 좋은 기념품은 아니다. 무거우니까. 하지만 외국 서점에 가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해외 잡지를 살 수 있다. 패션 잡지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책을 펼치고 재미있어 보이는 기사나 평소 좋아하던 포토그래퍼의 작업이 있으면 구입하는 편이다.

3 수시로 꺼내 본다. 스타일링을 준비하기 전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보기도 하지만 그냥 재미로 볼 때도 많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잡지 화보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종이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4 늘 마음 한편으로 동경하는 스태프들이 있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 커버는 영국 작가 알라스데어 맥렐란의 작품이다. 언젠가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한다는 특별함이 있다. 내가 종이 잡지를 사 모으는 데는 크레디트를 보기 위함도 있다. 이 화보에 어떤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참여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잡지는 기본적으로 한정판이다. 매달 새로운 잡지가 발행되니까. 소장 가치도 충분하다.

5 다시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물건.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과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

03

정영철 / 카 클럽 브랜드 ‘에레보’ 대표 | 모자

1 캘리포니아, 서울, 하와이에 살면서 모은 모자들. 아크테릭스 모자만 캐나다 여행을 다녀온 동생에게 선물받았다.

2 여행 다닐 때마다 여러 브랜드의 매장을 찾는다. 이따금 빈손으로 나오기 민망할 때가 있다. 가장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면서, 브랜드의 색깔이 녹아 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게 모자였다.

3 두 가지 모자를 소개하고 싶다. 우선 맨 아랫줄 오른쪽 ‘K’와 태극기가 새겨진 파란색 모자. 2009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을 보러 갔다 구입한 모자다. 이치로에게 안타를 맞고 졌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보러 간 경기였기에 이 모자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 위의 갈색 모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에 갔을 때 구입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자수로 새길 수 있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골랐다. 두 모자 모두 아버지가 생각나는 기념품이다.

4 가짓수가 워낙 많아 생각보다 자주 쓰지는 못한다. 그래도 수시로 돌려가며 착용하는 편이다. 디자인은 예쁜데 막상 머리 위에 올리기에 애매한 모자도 있다. 그런 모자들은 자동차 실내에 장식품처럼 모셔둔다.

5 함께했던 사람이 생각나는 기념품.

04

정보연 / 위스키 칼럼니스트 | 애시트레이

1 런던, 도쿄, 파리, 베를린의 빈티지 마켓에서 구입한 애시트레이. 여행이나 출장으로 해외에 가면 꼭 그 도시의 마켓 일정을 확인한다.

2 원래는 접시와 잔 모으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큰 도자기를 사기는 쉽지 않다. 깨지기 십상이니까. 애시트레이는 크기가 작고 납작해, 들고 다니기에도, 여행 가방에 넣기에도 용이하다. 실용성도 확실하다. 위스키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가에도 취미를 붙였다. 시가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시가를 태우는 동안 잘 만들어진 애시트레이를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3 유럽의 1970~90년대는 흡연에 관대한 시대였다. 할머니들이 정원에 나가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던 문화가 자리 잡았고, 여러 브랜드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애시트레이에 담아 선보였다. 덕분에 빈티지 애시트레이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정중앙의 구찌 애시트레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 오른쪽 기마병이 새겨진 접시는 1980년대 페라가모에서 발매했다. 지금은 사라진 옛사람들의 심미안과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4 집에 애시트레이가 200점 정도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한다. 계절에 따라 자주 손이 가는 옷의 색깔이 바뀌는 것처럼, 애시트레이의 색깔과 그림을 골라서 쓰는 재미가 있다. 가을에는 풍성한 과일이나 따뜻한 브라운 컬러가 새겨진 애시트레이를 자주 꺼낸다.

5 현실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물건.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물건.

05

이상휘 / 유튜브 <자동차 읽어주는 남자> 운영자 | 마그넷

1 2023년 9월 이탈리아 사르데냐 공항에서 구입한 마그넷.

2 사실 나는 기념품을 모으지 않는다. 대부분 쓸모도 없고, 공간만 차지하니까.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도 기념품은 일절 안 샀다. 살면서 처음 사본 기념품이 이 마그넷이다. 출장으로 사르데냐에 가기 전까지 사르데냐라는 섬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르데냐에서 보낸 시간이 근사했다. 꼭 다시 한번 찾고 싶은 섬이지만, 왠지 죽을 때까지 사르데냐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공항 기념품 가게에서 마그넷을 샀다.

3 사용 안 한다. 냉장고에 붙여두긴 했지만, 보시다시피 포장지도 안 뗐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4 사르데냐에서 요트 탈 일이 있었다. 새파란 지중해를 담고 싶어 요트 위에서 드론을 띄웠는데, 다시 착륙시키기까지 바람 때문에 30분 넘게 애를 먹었다. 함께 출장을 간 동료가 마침내 드론을 맨손으로 잡았을 때의 안도감과 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육지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다 건너 절벽 위 돌탑이 보였다. 이 마그넷이 그 돌탑 모양이다.

5 확신에 차서 사는 기념품. 옆 사람에게 ‘이거 살까?’ 묻고 싶다면 그 물건은 내려놓는 게 좋을 거다. 이미 후회할 준비를 하는 셈이니까. 비싸도 좋고 저렴해도 좋다. 다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이거 왜 샀냐면’ 하고 줄줄이 말하고 싶은 물건이 좋은 기념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음악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더욱 친해지는 느낌이니까.
CD도 모으긴 하지만, 앨범 아트워크가
크게 새겨진 바이닐 위주로 모은다.”

06

신현태 & 권민지 부부 / 부평구문화재단 예술기획팀 & 일러스트레이터 캐스 | 바이닐

1 여행 다닐 때마다 들른 레코드 숍에서 구입한 바이닐. 선물받은 것들도 있다.

2 우리 부부의 공통 관심사는 음악이다. 여러 장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의 옛 가요를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음악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더욱 친해지는 느낌이니까. CD도 모으긴 하지만, 앨범 아트워크가 크게 새겨진 바이닐 위주로 모은다.

3 한대수 선생님께 선물받은 비틀스의 바이닐이 특별하게 기억 남는다. 뉴욕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뮤지션 선생님이 집으로 초대해주셨다. 아내가 단편 애니메이션 <현대음률> 한대수 편에서 한대수 선생님의 애니메이션을 그린 게 연이 됐다. 그 밖에도 각각 사인을 받은 배철수 선생님의 <송골매 3집>, 김현철 선생님의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김창완 선생님의 <산울림 새노래 모음>, 이정선 선생님의 <신촌>, 전인권 선생님의 <들국화 II>, 송창식 선생님의 <83 송창식> 등도 특별하다.

4 구입한 음반들은 모두 한 번씩은 들었다. 최근 아내가 취미로 디제잉을 시작하면서 더 자주 사용하는 중이다.

5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er : 박도현

Copyright © 아레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