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달달하고 쫄깃한 ‘속살’ 가득…꽃게, 가을바다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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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꽃게는 단풍을 닮았다.
단풍도, 꽃게 껍질의 빨간색도 '카로티노이드' 덕분이다.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져 있던 나뭇잎 속 주황색이 가을에 선명해지듯 꽃게를 찌면 단백질과 결합해서 청갈색을 띠던 색소 물질이 본래의 붉은빛을 드러낸다.
잘 발라낸 꽃게살로 가득 채운 라비올리를 게 내장으로 만든 소스에 적셔 쪽파와 함께 먹으면 가을 바다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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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 내는 글루탐산 등 풍부
수온 낮아지면 단백질도 증가
삶거나 찌기만 해도 고소한 향
버터 곁들여 요리땐 풍미 배가
가을 꽃게는 단풍을 닮았다. 단풍도, 꽃게 껍질의 빨간색도 ‘카로티노이드’ 덕분이다.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져 있던 나뭇잎 속 주황색이 가을에 선명해지듯 꽃게를 찌면 단백질과 결합해서 청갈색을 띠던 색소 물질이 본래의 붉은빛을 드러낸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게맛이 더욱 진해진다. 꽃게의 맛은 그저 단짠(달고 짠)이라고 하기에는 섬세하며 복잡하다. 게살을 입에 넣으면 간간한 맛에 이어 단맛이 서서히 퍼져 나온다. ‘글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글리신은 설탕의 70% 정도로 단맛을 낸다. 바닷물 속에서 생존하려면 염도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꽃게 같은 갑각류는 단맛이 나는 글리신을 그런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 게살에는 그밖에도 알라닌이란 또 다른 단맛의 아미노산이 들어 있고,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과 핵산까지 풍부하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뷔페에서 내놓는 수입 대게나 킹크랩 다리살에서는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까. 수용성인 글리신 성분이 물에 삶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쉽게 씻겨 나가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차가워지면 꽃게맛이 깊어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게·바닷가재 같은 갑각류에는 우리가 보통 내장이라고 부르는 간췌장이라는 소화기관이 존재한다. 가장 기름지고 풍미가 좋은 부위다.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B12가 많이 들어 있다. 2024년 중국 닝보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수온이 낮아진 상태에서 월동할 때 게의 영양가와 풍미가 향상된다. 간췌장의 지질 함량과 게살의 단백질 함량이 온도가 낮을수록 증가하고 단맛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제철 꽃게가 집까지 살아서 오면 좋은데, 중간에 게들이 죽기라도 하면 살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려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도 간췌장과 관련 있다. 간췌장에 들어 있는 소화효소가 빠져나와 자가 소화를 일으키면 게살이 다 녹아버린다. 게를 낮은 온도에서 익히거나 덜 익혀도 마찬가지 문제가 생긴다. 최대한 빨리 요리하거나 급속 냉동하는 게 나은 이유다.
고기를 물에 삶거나 찌면 구운 고기 특유의 향을 맡을 수 없다. 당과 아미노산을 함께 넣고 가열하면 둘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갈색의 복합적 풍미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화학반응이 120℃ 이상 고온에서만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살은 예외다. 게살에는 유리 아미노산과 당이 워낙 풍부해 삶거나 찌기만 해도 견과류와 비슷한 고소한 냄새가 난다. 서양에서는 게를 요리할 때 버터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과학적 이유가 있다. 게와 버터에는 디아세틸이라는 팝콘향이 나는 물질이 공통으로 들어 있다. 게를 버터와 함께 먹으면 고소한 풍미가 더 진해져서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작은 프랑스 식당 ‘푸드실방’은 진한 국산 꽃게맛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국내산 농산물도 적극 활용하는 선정석 셰프는 식재료에 버터와 소금만으로 맛을 낸 요리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확실히 보여준다. 잘 발라낸 꽃게살로 가득 채운 라비올리를 게 내장으로 만든 소스에 적셔 쪽파와 함께 먹으면 가을 바다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여기에 와인 한 모금을 더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먹는 동안은 즐거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음식과 요리를 맛볼 때마다 생산자와 요리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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