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다 보니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게 됐다 [새로 나온 책]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북하우스 펴냄
“그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게 최고로 즐겁다.”
‘일본에 살면서 루마니아어로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일본인 작가’가 있다. 1992년생인 저자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뒤 방에 들어가 스스로를 가두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다가 루마니아 영화를 만난다. 이 히키코모리 시네필은 루마니아어를 혼자 공부하기 시작한다. 어학을 좋아해 ‘어학 오타쿠’인 점도 한몫했다. 요즘은 루마니아어로 소설이나 시를 써서 루마니아 문예지에 싣고 있다. 남과 다른 취향, 남과 다른 삶의 방식이 불안만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부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저자의 삶이 말해준다.
인간은 아직 좌절하지 마
김재인 지음, 우리학교 펴냄
“인공지능은 맥가이버 칼과 비슷하다.”
인공지능(AI)의 목표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인간다움)이다. 이 기술의 최근 발전(생성 AI)은 마치 그 목표가 이뤄졌고, 앞으로 인간이 ‘학습’할 필요성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현대 철학을 기반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AI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미 널리 확산되어 있는 AI에 대한 통념과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 AI는 ‘언어로만’ 학습할 수 있는 반면, 풍부하고 복잡미묘한 인간의 세계에서 언어는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소년 독자를 겨냥하고 있지만, 생성 AI니 ‘초거대 언어모델’이니 하는 낯선 개념이 궁금한 성인들이 AI의 세계에 가장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과학철학’의 맛도 이 책을 통해 느껴보시기 바란다.
관타나모 키드
제롬 투비아나 글, 알렉상드르 프랑 그림, 이나현 옮김, 돌베개 펴냄
“형제들, 저 이제 집으로 가요!”
양쪽으로 붙들리고 손에는 수갑을, 발에는 족쇄까지 찬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며 웃는다. 표지에 나오는 이 장면은 악명 높은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 최연소로 수감된 무함마드 엘-고라니가 법정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갈 때의 장면이다. 테러와 전쟁에 연루된 사람을 수용한다는 관타나모에 끌려온 열네 살 아이는 그저 기도를 하려고 이슬람 사원을 찾았을 뿐이다. 8년 뒤 그는 재판에서 이기고 실제로 석방됐지만, 여전히 ‘관타나모 출신’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쓴 기자 제롬 투비아나에게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머리 누일 곳을 찾게 해주십시오. 너무나 지쳤습니다.” 그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은숙과의 대화
진은숙 지음, 이희경 엮음, 을유문화사 펴냄
“시간이 가장 무서운 재판관 같아요.”
작곡가 진은숙을 거장의 반열로 끌어올린 공은 작품의 면면보다 생(生)과 업(業)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있을 터이다. 오직 음악으로 영생하기 위해 온 힘으로 삶의 파고를 건너온 그의 기록은 악보 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물리학자, 제약회사 CTO(최고기술책임자) 등 현대음악과의 교집합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의 전문가와 나눈 대담을 보면, 이 ‘의외의’ 만남이 가진 의도를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아직 클라이맥스는 오지 않았다’라는 마음으로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 앞에서 장르 사이의 벽은 허물어진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진은숙에게서 재차 거장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펴냄
“잘못된 믿음의 세상 안으로 뛰어들었던 경험.”
행동경제학자인 저자는 지인으로부터 ‘왜 이렇게 변했냐’는 메일을 받는다. 지인은 그에게 링크 몇 개를 보냈다. 그 웹사이트들에서 그는 코로나19 음모의 지도자로 묘사돼 있었다. 온라인 세계에서 그는 ‘빌 게이츠와 공모해 사악한 계획을 꾸미는 사람’이었다. 몇 시간 동안 그 ‘평행우주’를 헤매던 그는 자신의 ‘유죄’를 토론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발견하고, 한 패널에게 연락했다. 얘기를 나누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증오를 온라인에서 퍼트리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음모론의 피해자가 된 저자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믿게 되는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재난 이후, 사회 (참사 다음의 삶과 권리를 위하여)
김현준 외 지음,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기획, 나름북스 펴냄
“오로지 즐겁기만 하면 되는 유일무이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 사라졌다.”
프랑스 현대 정치철학을 줄줄이 꿰고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말하던 연구자들이 재난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 엮었다. 책의 프롤로그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인 경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10대에 세월호를 경험했고 입시에 실패한 뒤 대안학교에 다녔다. 거기에서 여행을 매개로 세월호와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즈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경진은 이태원 참사고 뭐고 지겹다고 했다. 애도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10대 시절과 고립되고 고단한 비정규직의 경진이 다른 재난을 경험하고 있었다. 재난과 참사는 살아 있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잘 살기 위해’ 책을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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