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플랫폼
정보 취약계층은 기만 광고로 착취
검색기록 자동 삭제 장치 도입돼야
음식배달을 둘러싼 중개수수료 인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음식배달플랫폼 업체와 입점 업체 대표로 구성된 상생협의체가 9차례나 논의를 했다. 하지만 의견 차이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논의를 이어 간다고 한다. 거대 플랫폼의 독과점 남용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의 법안이 지난달 말 국회에 제출됐다. 관련 업계는 규제가 혁신과 성장 엔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나, 정부는 독과점 남용 행위가 혁신과 성장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의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과 보안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는 것 같다. 플랫폼에 가입하면서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뉴스나 관심사를 검색하거나 영화나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플랫폼들은 이용자가 제공하는 개인정보와 검색 기록·쿠키·캐시를 활용해 맞춤형 광고(타깃 광고)와 같이 상업적 목적에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와 사생활 정보가 노출되거나 유출되기도 한다.
최근 필자는 이런 경험들을 했다. 좋아하는 운동기구를 컴퓨터에서 검색하고 구매는 하지 않았다. 이후 컴퓨터만 켜면 유사한 제품 광고가 끊임없이 화면에 뜬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플랫폼은 필자의 관심 사항을 정확히 알고 있다. 또 다른 예다. 핸드폰으로 여행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하지는 않았다. 핸드폰에 수시로 유사한 숙소 광고가 뜬다. 플랫폼이 나의 여행 일자와 여행 지역을 정확히 알고 있다. 민감한 정보와 관련된 또 다른 예다. 정치적인 이슈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핸드폰으로 검색했는데 이후 유사한 동영상이 화면에 계속 뜬다. 마치 필자의 정치적 성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위의 사례는 사소해 그냥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제공한 개인정보와 검색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구글·네이버 등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비밀스러운 사생활 정보를 이용자 자신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이용자들은 기억력 한계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발전할수록 플랫폼의 정보수집과 활용은 더 정교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 두려워진다.
플랫폼들은 가입 시 제공받은 개인정보와 검색 기록 심지어 중개업자를 통해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민감한 정보(종교, 정치적 신념, 재산 정도, 건강 상태, 나이, 성별, 교육 수준 등)를 타깃 광고에 이용하기도 한다. 개인 신용정보(재산 수준, 교육 수준, 직업 등)를 이용해 대출 금리 차별에 활용하기도 한다. 정보 취약계층(아동·저소득층·군인·노인·저학력층 등)에 허위·기만 광고로 이들을 착취하기도 한다.
지난 9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플랫폼의 과다한 정보수집 및 보관과 상업적 이용을 경계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민감한 정보를 타깃 광고 등 상업적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정보수집을 최소화하고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노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FTC는 2015년에도 사물인터넷(IoT)과 관련해 건강·의료·소득·직업·인종·종교·정치적 신념 등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보관·활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정보책임자를 임명해 개인정보 보호 관리를 철저히 하고 보안사고 발생 시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용자들은 인터넷 접속 기록과 쿠키들을 삭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용자 특히 정보 취약계층은 삭제 옵션이 있는 줄도 모른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삭제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플랫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색한 기록과 쿠키들을 자동으로 삭제하도록 하면 어떨까.
김형배 더 킴 로펌 공정거래그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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