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기억을 지배하는 사진의 기술
신기하게도 자연광이 좁은 구멍을 통해 어두운 곳으로 들어오면 외부 이미지가 그대로 안쪽에 투사된다.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카메라의 어원이 여기에서 왔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 현상이 잘 일어나도록 빛과 어둠을 조절하고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를 고착시키고 재생하는 기술을 구현한 것이 근대의 카메라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정지된 한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복제함으로써 시각예술뿐 아니라 학문, 산업체계 등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화가나 조각가의 관념을 통하지 않는 시각적 재현이 가능해졌으며 보편화한 기계적 복제를 통해 대량생산과 대중적 소비를 이끌었다.
자동적인 빛의 작용을 재현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진기술이 자동적으로 완성된 것은 결코 아니다. 상(像)을 맺히게 하고 그것을 고정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초의 사진은 1829년 발명된 조제프 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빛의 글쓰기)인데 노출시간이 거의 8시간에 이르렀고 이미지도 매우 거칠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니엡스의 기술을 이어받은 루이 자크 다게르가 은판을 사용해 훨씬 정교한 이미지를 완성했는데 노출시간을 20분 정도로 대폭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 다게레타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상업적 사진의 시발점이 됐다. 20분이라면 그 어떤 초상화도 따라올 수 없는 사실적인 이미지, 즉 사진을 갖기 위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여전히 시나브로 빛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무기력함도 느껴지지만.
그 기술적 한계 때문에 초기 사진들은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빛이 풍부하고 카메라도 오랜 시간 고정돼 있어야 하다 보니 공원이나 거리처럼 실외 풍경이 주를 이뤘는데 고즈넉하다 못해 황량해 보이는 것이다. 여느 빛바랜 사진들처럼 영원히 잃어버린 과거의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다. 움직임이 없는 부동의 사물들만 존재하기 때문에 적막하고 텅 빈 느낌을 준다. 당시 공원이나 거리에 행인이 하나도 없었나. 그건 아니다. 20분 동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사진에 흔적이 없을 뿐이다. 다른 예술들에서는 배경에 머물던 풍경들이 카메라 예술에서는 주인공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런 태생적인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초기 사진들이 흘러가는 시간을 견딘, 그렇지 않았다면 사라져버렸을 순간을 지속으로 다져놓은 모습이었다면 19세기 후반부에는 순간포착 사진, 소위 스냅사진이 등장하게 된다. 사진술의 발달이 결국 시간과의 싸움인 것은 그 순간의 포착이 20분, 2초, 아니 0.02초 등으로 좁혀지며 우리 맨눈을 넘어선 찰나를 겨눠왔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찰나를 팽팽한 명주실이 끊어지는 순간의 64분의1 정도라고 하던가. 카메라의 셔터스피드는 찰나를 넘어 밀리초(1000분의1초) 단위로 나뉜다.
이제 더 이상 존재하는 것 중 사진이 놓치는 것은 없다. 아니 자동보정이나 필터기술로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까지도 만들어낸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지워버리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사진의 사실성은 이제 현실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사진술이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초기 사진들에서처럼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진이 진실로부터 벗어날 때 위협받는 것은 우리의 실존이 아니라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곤 하지만 사진은 기억을 돕기보다 지배한다. 이제 우리의 기억은 언제, 왜 찍었는지도 모르는 사진이 넘쳐나는 스마트폰 메모리에 연동돼버렸다. 일상의 매 순간을 SNS에 올리고 또 지우며 결국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는 우리에게 사진은 어떤 기술이 되고 있는가. 추억의 빛은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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