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몰래들 쓰고 있는 AI

다니엘 튜더 前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2024. 11. 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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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영어로 쓴 소설 초고를 완성한 후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한국어로 소설을 읽은 감상을 말해주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나 인물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순 있었지만, 많은 부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 AI(인공지능)를 이용한 문학 번역의 가능성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 실은 속으로 그 대답은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컴퓨터가 작가가 쓴 작품의 뉘앙스와 리듬까지 포착하여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그 추측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확인했다.

여러 번역 서비스를 사용해 본 결과, 단순히 직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뉘앙스와 감성, 관용어 등까지 파악한,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였지만, 작가 제임스 조이스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번역에 쏟는 시간을 90% 정도는 줄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덴마크 번역가협회 전 회장인 모르텐 비스비(Morten Visby)는 범죄 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등 장르 소설의 AI 번역에 대해 “꽤 괜찮다. 인간이 번역했는지 기계가 번역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가 벌써 4년 전이고 그 이후 AI가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영국 기자 친구에게 AI를 업무에 사용하는지 물어봤을때 “많이 사용한다”고 답했다. AI가 연구를 돕고, 심지어 그의 글쓰기 스타일처럼 기사를 작성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가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일은 이제 아이디어를 내고,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AI가 작성한 기사를 검토하는 일로 바뀌었다. 한 변호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AI가 법정에서 증인을 신문할 수는 없지만, 법무법인이 고객에게 청구하는 시간당 엄청난 비용의 일을 일부 이미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등 금융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AI가 대신할 수 있는 직업 대부분이 화이트칼라 직종이다. 자녀가 자라서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래에 과연 초임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는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오지 않을 거라고 추정했던 미래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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