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으로 품팔이… 어머니의 비상금으로 딴 ‘태권도 단증’

유석재 기자 2024. 11. 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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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독자 문영호씨의 보물
독자 문영호씨의 태권도 단증. /문영호씨 제공

독자 문영호씨는 ‘나의 보물’을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것은 태권도 단증<사진>이다. 그가 태권도 1단을 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7년의 일이었다. 승단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장롱 깊숙이 숨겨 뒀던 꼬깃꼬깃 접은 비상금을 꺼내 건네줬다.

지역 유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부족할 것 없이 곱게 자랐던 어머니는 6·25 참전 용사인 아버지에게 시집온 뒤 벌목장에서 일하다 몸을 크게 다쳤다. 그 고단한 육신으로 새벽에 일어나 남의 논밭으로 날품팔이를 다녔다.

“너 형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꼭 꿈을 이뤄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눈물을 닦아 주고 억울함을 풀어 주렴.” 비상금을 주면서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어머니는 낙엽이 떨어지듯 4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애틋한 모성이 담겨 있는 그 단증을 지금도 고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거나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단증을 꺼내 보며 따뜻한 위안과 위로를 받습니다.”

문씨는 훗날 경찰이 됐고, 어머니가 남긴 말씀을 평생 실천하려 애썼다고 한다. 배고픔을 못 이겨 구멍가게에서 빵을 훔치다 잡힌 열 살 소년이 있었는데, 보육원에 간 뒤 태권도를 수련했다고 한다. 그에게 줄곧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문씨는 소년이 보육원을 떠날 무렵 월셋방도 구해 줬는데, 그 뒤 일식 요리사가 돼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꼭 30년 전인 1994년 파리 IOC 회의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그 뒤로 세계의 여러 스포츠 약소국에 첫 메달이나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이기도 했다. 지금은 세계 210여 국에서 2억여 명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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