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 52시간제 예외’ 핵심 빠진 반도체 특별법
정부 여당이 발의할 ‘반도체 특별법’에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제외’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반도체 기업을 비롯한 산업계는 R&D 인력만이라도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 규제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해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면서도 반도체 업계의 숙원인 ‘주 52시간제 유연화’는 포함시키지 않은 채로 관계 부처 등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예외를 도입하면 야당과 노동계 반발로 특별법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은 한국처럼 경직적인 근로 시간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얼마전 미국 포천지(誌)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 직원들이 “종종 주 7일 새벽 2시까지 일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연구 센터도 하루 24시간, 주 7일간 가동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만 ‘주 52시간’의 족쇄를 차고 있다. 연구 개발에 어떻게 시간 제한이 있을 수 있나. 이래서 어떻게 반도체 경쟁에서 이기겠나.
노동자 보호를 위해 근로 시간의 상한선을 두면서도 연구개발 인력이나 고소득 사무직에 대해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미국은 주급 684달러 이상의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이나 연소득 10만7432달러 이상 고액 연봉자는 근로시간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본도 연봉 1075만엔 이상 연구개발 인력, 첨단 기술 엔지니어, 금융 애널리스트 등은 예외를 인정하고, 대만은 노사 합의하에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국만 경직적이고 일률적으로 주 52시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경쟁 기업들은 심야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핵심 부서가 가동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저녁만 되면 연구소 불이 꺼지는 일이 일상화됐다. 여야와 노동계 모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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