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서울 상공에서 북한 드론이 자폭하는 날
가난한 조직일수록 탐내는 무기
러 파병 北이 배워서 쓴다면
오물 풍선과는 비교 못할 위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북한이 1만명 넘는 군인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에 밝은 소식통에게 ‘돈 빼고, 북한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바로 답이 왔다. “당연히 드론 전투 기술이다. 그 ‘당근’ 없이 북한군이 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의 첫 국가 간 전면전이다. 드론·인공지능 같은 디지털 첨단 기술이 실전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전쟁이기도 하다. 전투 드론, 그중에서도 게임하듯 조종사가 목표물의 영상을 들여다보며 타격하는 일인칭(FPV·first person view) 드론은 이 전쟁에서 사실상 ‘발명’된 전술로 꼽힌다.
미군이 이라크전에서 썼던 ‘프레데터’ 드론 등은 중무기를 장착한 수백억원짜리 시스템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쓰는 FPV 드론은 수십만원짜리도 많다. 지난해 인터뷰했던 한 우크라이나 드론 조종사는 “아마존 쇼핑몰에서 중국 DJI 드론을 주문한 다음 개조해서 전투에 투입했다”고 했다. 서방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인 전쟁 초기, 전력(戰力)이 러시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우크라이나가 주요 도시 몇 개를 탈환하게 해준 핵심 병기가 FPV 드론이었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허를 찔린 러시아도 이후 드론 경쟁에 뛰어들었다. 두 나라 모두 올해 100만대 넘는 드론을 생산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사 전문가는 “FPV 드론은 기기 자체의 성능보다 여기에 장착할 무기와 운용법의 창의성이 승패를 가른다”고 했다. “드론을 적의 무기고에 조용히 보내 자폭시키기만 하면 대규모 폭발을 쉽게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싸니까, 실패하면 그만이고요. 조종사 없는 가미카제(일본의 자폭 전투기)라 보면 됩니다.” 소셜미디어와 현지 언론엔 실전 투입된 드론의 최신 활용법을 담은 영상과 글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온다. ‘파편 탄두’를 실은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군 위에서 자폭해 큰 피해를 주고, 러시아군은 드론에 야간 투시경을 달아 숲에 숨은 우크라이나군을 한밤에 정밀 타격하는 식이다. 하지만 진짜 기발한 드론 전술은 두 나라 모두 기밀로 분류해 감추고 있다. 유일한 파병국인 북한만큼은 전장에서 생생히 들여다볼 것이다.
값싼 FPV 드론은 북한과 비슷한, 가난하고 고립된 조직에 특히 유용하다.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드론을 보내 이스라엘의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며 전쟁의 문을 열었다. 민간 드론에 폭탄을 달아 통신탑·관제탑·무기고를 동시다발적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이슬람 무장 세력 후티가 홍해의 서방 선박을 공격하며 쓴 무기도 드론이다. 미국이 격추하긴 했지만, 2000달러짜리 드론을 떨어뜨리려 한 방에 200만달러 넘는 방공 미사일을 쏘느라 손실이 컸다.
이들 이슬람 단체의 ‘뒷배’인 이란은 러시아에도 드론 지원을 해왔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러시아-이란-하마스·후티로 이어지는 드론 연대(連帶)에 자연스레 합류하게 됐다.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드론 훈련을 하고 있다’는 국정원 보고는 그래서 섬찟하다. 북한이 러시아에서 배워 FPV 드론을 서울 상공 어디서 자폭시키기만 해도 경험 못 한 공포가 확산할 것이다. 오물 풍선과는 차원이 다르다.
방산 선진국이어서인지, 한국은 약자의 무기로 여겨진 전투용 드론 개발엔 열심이지 않았다. 정부가 북한 파병을 계기로 계획 중이라는 우크라이나 참관단 파견은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FPV 드론의 전술을 우크라이나 쪽에서 들여다보고 빨리 따라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많은 서방 국가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드론 전쟁을 배운다. ‘전쟁놀이’ 운운하며 야당이 발목 잡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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