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23년 전 삼성 보고서의 교훈
반세기 동안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지배했던 인텔이 결국 공식적으로 반도체 대표주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대표 주가 지수인 다우지수에서 탈락하고, 그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준 것이다. 인텔과 함께 30년 가까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삼성전자도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경쟁력을 잃게 된 원인에 대해 기술보다 비용 절감에 치중했던 경영 전략, 수십 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하며 나태해진 조직 문화 등 여러 공통점을 뽑는다.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지만 가장 핵심은 최근 2년 새 급격히 변한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런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적어도 삼성은 20년 전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하기 시작한 23년 전 삼성그룹의 싱크탱크였던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도체산업’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제는 한순간의 방심과 전략 착오에 의해 생존이 엇갈리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방심과 전략 착오로 AI 경쟁에서 밀려난 인텔과 삼성전자를 예측한 듯한 문장이다.
인텔은 PC와 서버용 CPU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을 자신하다가 모바일과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대응을 게을리했다. 뒤늦게 모바일용 프로세서와 통신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퀄컴을 비롯한 경쟁사를 따라잡지 못해 사업을 중단하거나 외부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텔이 과거 엔비디아와 오픈AI 인수 기회를 놓쳤다는 것도 뒤늦게 드러났다.
23년 전 보고서에서는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언급했다.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반도체산업 핵심 경쟁력은 선행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규모 생산 능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점차 고객이 원하는 것을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뀔 것”이라며 “설계 기술력, 시스템 응용력, 소프트웨어 개발력이 더 강조될 것”이라고 했다. AI 가속기 핵심 칩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등장을 암시하는 듯하다. HBM은 고객사 요청에 맞게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삼성이 HBM 경쟁에서 밀린 것에 대해 경쟁사보다 고객사와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제 인텔과 삼성은 모두 더 이상 ‘1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상황에 처했다. 지금이라도 기술 중심 경영으로 되돌아가 전열을 다듬지 않으면 AI 리더 기업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도 추월당할 수 있다. 23년 전 보고서가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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