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트럼프 도박’에 홀려 ‘푸틴 수렁’에 빠진 김정은
북한군 파병으로 막판 ‘숟가락 얹기’
불확실성의 안갯속 ‘총알받이’ 모험
‘조종의 대가’ 푸틴의 덫 덥석 물었다
물론 트럼프 대선캠프도, 러시아 크렘린궁도 즉각 부인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는 언론 대담에서 즉답을 회피하며 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퇴임 후 푸틴과 통화했는지 ‘예 또는 아니요’로 답해 달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영리한 일(smart th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좋은 것이지 나쁜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기묘한 브로맨스, 특히 늘 푸틴에게 다가가며 절대 험담하지 않는 트럼프의 푸틴 사랑은 미 정보당국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상대를 홀리고 겁주는 스파이 출신 푸틴의 포섭 능력에서, 누군가는 난폭한 킬러에 대한 존경심부터 키워 온 트럼프의 성장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트럼프는 2022년 2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두고도 “천재적이다” “노련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결코 전쟁은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무능 탓이라고 했다. 나아가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해 왔다. 구체적 계획에 대해선 “알려지면 실패한다”고 함구하면서.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강하게 힐난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고? 푸틴은 (이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을 것이기에. 트럼프는 푸틴을 바로 환영해 맞이했을 것이다. 독재자들에 관한 한 트럼프의 기본 생각은 원하는 대로 뭐든 하도록 놔두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 D 밴스 부통령 후보가 얼마 전 밝힌 구상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우크라이나엔 재앙이 될 것이다. 현재의 교전선을 기준으로 비무장지대를 조성하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통해 전쟁을 동결(凍結)한다는 것인데, 빼앗긴 영토의 수복도 포기하고 서방 동맹 가입도 배제되는 그런 방안은 우크라이나에는 항복 문서에 사인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르면 내일 윤곽이 드러날 미국 대선 결과는 향후 세계질서,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를 가를 중대 분기점이다. 설령 트럼프가 당선된다 해도 하루는커녕, 아니 몇 주, 몇 달 안에도 종전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2년 반 넘게 계속된 전쟁이 끝 모를 연장전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종전의 ‘선 긋기’에 앞선 쟁탈전으로 치달을지 이번 미국 대선 결과로 대략 큰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군 파병은 이 결정적 시기를 목전에 두고 벌인 한 판의 도박이다. 막판에 한몫 챙기겠다는 심산에서였을 텐데,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 그런 계산이 통할 수도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으로 한때 자국 영토 쿠르스크 지역에서 서울 면적의 두 배가량을 빼앗겼지만 이제 그 절반을 되찾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도 우위 속 교착 전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니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군이 보내질 전장은 한반도의 산악 지형과는 전혀 다른 대평원의 낯선 환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밀폭격과 드론전, 핵위협과 참호전, 용병전까지 첨단과 구식 전쟁 양태가 온통 뒤엉키면서 점차 총력전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욱이 병사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러시아식 공세 작전에 북한군은 총알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실려 온 병사의 주검을 본 주민들의 동요가 불러일으킬 체제 불안의 태풍까지 김정은이 염두에 뒀을지는 의문이다.
북한군은 이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돼 며칠 내로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실전 참여 시기나 강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쟁은 끝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김정은은 그 전장의 안갯속에 병사들을 던져 놓았다. 김정은이 결행한 비정한 도박의 미래를 가늠할 첫 결과가 곧 나온다. 그걸로 대박이 날지 쪽박을 찰지 당장 판가름 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조종의 대가’ 푸틴이 트럼프 도박판을 미끼 삼아 파 놓은 함정에 김정은이 빠진 것 아닌지는 두고 볼 문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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