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화석서 상상해낸 ‘두 얼굴의 용’… 동양선 왕, 서양선 괴물[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4. 11. 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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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등장하는 용
인류는 거대한 공룡의 화석들을 보면서 ‘환상 동물’ 용을 상상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에서 용이 왕을 상징한다면 서양에서는 다소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중국 사원 지붕에 장식된 용 조각상. 게티이미지뱅크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드래건 다리’의 조각상. 게티이미지뱅크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모두가 알지만 정작 그 실체를 모르는 동물인 용. 사실 용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구석기시대부터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 대표적인 환상 동물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용은 어떻게 우리의 역사와 함께했을까. 용의 해를 마무리하면서 동서양을 넘나들며 고고학이 전하는 그 내막을 살펴보자.

‘용’은 기본적으로 뱀과 같은 파충류와 유사하며, 여기에 여러 동물의 모습이 결합하여 다양하게 표현된다. 비록 상상의 동물이지만 근대 이후에 고생물학이 발달하며 백악기의 공룡이 그 원형으로 지목된다. 물론 공룡 자체는 인간이 등장하기 6000만 년 전 이미 멸종했으니 일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원시인이 공룡과 맞선 적은 없다. 그렇지만 사냥이 직업이었던 선사시대 원시인들은 동물의 뼈에 대한 지식은 우리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사방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공룡의 화석들을 보면서 미지의 동물에 대한 신화를 키웠을 것이다. 실제로 3만6000년 전부터 만들어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꼬리를 한 그림이 발견된다. 성경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이 등장하며, 중국의 탄생 신화인 복희, 여와의 그림과 그리스의 여러 신화에도 뱀처럼 다리가 엮여 있는 신화적 형상이 등장한다.

용 무찌르는 성자, 기독교 그림 등장

고대의 화석을 모으는 풍습은 실제로 발굴로 확인되기도 한다. 일본의 홋카이도 지토세에서 발굴된 조몬시대(한국의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에서 암모나이트 화석이 발견되었다. 지토세 근방에는 암모나이트 산지가 없으니, 멀리서 귀한 암모나이트를 교역한 것이다.

기록이 풍부한 그리스에서는 고대의 화석을 찾아 떠난 탐험대의 기록이 곳곳에서 보인다. 실제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공룡과 유사한 괴물이 등장하며,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는 이마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매머드의 화석에서 착안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4세기 러시아 노브고로트에서 그려진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성상화. 강인욱 교수 제공
동양에서 용이 왕을 대표한다면 서양에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중세 유럽에서 용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인 순교자인 성 게오르기우스이다. 그가 말을 타고 용을 찔러 죽이는 장면은 다양한 종교화로 표현되어 유명한데, 특히 조지아(옛 그루지야)라는 나라는 그의 일화를 기념하여 나라 이름을 지었다. 용의 전설이 나라의 이름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센길레예우스코예에서 출토된 황금제 그리핀상. 강인욱 교수 제공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된 것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원하여 후에 그리스와 이웃하게 된 스키타이 유목민과 관련이 있다. 고전 연구가 에이드리언 메이어는 기원전 8세기에 본격적으로 고대 그리스에 등장하는 그리핀이라는 동물에 주목했다. 그리핀은 특이한 부리에 용과 육식동물의 모습이 결합된 독특한 형상의 전설상 동물로 지금도 유럽의 여러 가문에서 휘장으로 쓰는 대표적인 용의 형상이다. 이 그리핀의 형상은 2700년 전부터 유라시아 일대의 초원전사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던 동물 문양이었다. 심지어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알타이 고원의 초원 유목 전사를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라고 기록할 정도다.
몽골의 흉노 고분에서 발견된 용 모양 허리띠. 강인욱 교수 제공
이러한 그리핀은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사슴돌이라는 돌 기념물에 잘 남아 있다. 유라시아 초원의 중심인 몽골 고비사막에는 수많은 공룡 화석이 있다. 고비사막 근처에는 질 좋은 동광산이 많았으니 이 지역 유목민들의 주요한 채굴지였고, 그 과정에서 신기한 공룡의 화석도 쉽게 보였을 것이다. 특히나 그리핀의 독특한 부리 모양이 사람보다도 작은 코뿔소와 비슷한 프로토케라톱스와 많이 닮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중국선 한나라 때부터 ‘용=왕’ 상징

신비로운 용이 알려지면서 그것을 약재로 쓰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중국에서는 고대 화석으로 남은 동물의 뼈를 약재로 생각했다. 전통 약재를 모아놓은 중약대사전(中藥大辭典)에서는 그것들을 용의 뼈(용골), 용의 이빨(용치)이라 불렀다. 이는 실제로 코뿔소, 사슴이나 매머드 같은 고대 포유류 동물의 화석인데, 갈아서 약으로 쓰면 신경을 안정시키고 열을 내리는 특효약이라고 했다. 일본 에도시대에 개발되어 한국에서도 애용되는 진해거담제 ‘용각산’도 ‘용의 뼈’가 가지는 약효가 연상되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이름이다. 물론, 진짜 화석의 뼈는 없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무덤 문을 고대 동물뼈를 모아서 막아둔 것도 발견되었다. 인류는 빙하기를 거치면서 고대 화석을 신기한 힘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용의 뼈’를 갈아 먹는 풍습은 엉뚱하고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으로 이어졌다. 바로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1899년에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학자는 약재로 한약방에 들어온 뼈들에 쓰인 글자를 발견하고 그 뼈를 캐낸 장소를 찾아냈다. 바로 상나라의 수도였던 샤오툰이라는 지역이었다. 상나라의 왕과 수행원들은 밤마다 점을 치고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구석기시대 이래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는 용이지만, 최근에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곤룡포를 두른 황제의 모습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용이 황제의 상징으로 도입된 것은 위에서 말한 고대 그리스나 스키타이보다 한참 늦은 한나라 때부터이다. 그 이전 용의 이미지는 다소 달랐다. 주나라의 경국지색이었던 포사(褒姒)는 하나라 걸왕 때에 하늘에서 내려온 용의 침이 도마뱀으로 변해서 어떤 궁녀의 배 속으로 들어가 잉태했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허황된 이야기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역사의 시작에서 서양과 마찬가지로 용은 더러우며 사사로운 것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한나라 이후 황제의 상징에 용을 주요 모티브로 삼으면서 그 이미지는 바뀌었다. 용 무늬는 황제나 왕만 쓸 수 있게 했고 나아가서 주변을 속국으로 만드는 상징으로 용을 내세웠다. 중국에서 정립된 ‘용=군주’의 사상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으로 널리 퍼졌다. 수천 년의 맥락을 몰랐던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 중국과 접촉하면서 화려하게 변신한 용의 이미지가 중국의 전통인 것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용은 중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한반도-만주도 바위에 용 그림 등장

1980년대 이래 중국은 이 용 문화를 중국 문화의 특징으로 간주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로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훙산문화를 비롯하여 중국 각지의 신석기시대에 보이는 뱀 모양의 형상을 용으로 간주하고, 용의 기원을 중화문명 중심주의의 핵심적인 증거로 삼는다. 하지만 한반도와 만주 일대의 고대 원주민들이 후기 구석기시대에 그린 바위 그림에도 용 모양이 등장하며, 신화도 잘 남아 있다. 특히 극동 원주민의 용 신화는 ‘무두르’라고 해서 한국어의 미르와 같은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용이 중국만의 전통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피엔스는 보는 것만 믿지 않는다. 수많은 신과 신화를 만들었고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왔다. ‘사족’이라는 고사성어처럼 보이지 않는 용을 그리고 서로 비교하는 창의력은 문명의 기반이었다. 용뿐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동식물의 요소를 조합해서 다양한 신화적 오브제를 창조해 왔다. 빙하기를 거치며 사라져 버린 수많은 동물의 기억이 용으로 승화되어 신화로 남아 구전되었고 곳곳에서 뼈로 남아서 예술품으로 다시 표현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곳곳에서 용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고 숭배했던 우리의 역사는 최근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정보를 조합해서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AI를 보노라면 수천 년간 용을 만들어 놓은 우리 인류의 모습과 너무 유사해 보인다. 지난 수천 년 인간이 만들고 숭배했던 용은 AI 시대에 대한 예언은 아니었을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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