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부터 갚자” 허리띠 졸라매는 기업들…마케팅 비용도 팍팍 줄인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상장사들은 약 41조원 회사채를 발행해 약 31조원을 기존 빚 상환에 썼다. 지난 해 발행된 회사채도 70%가 빚 갚는 데 쓰였는데 올해는 더 비중이 더 늘어났다.
회사채 발행은 은행 대출과 함께 기업의 대표적인 외부 자금 조달 수단으로 꼽힌다. 회사채 외에도 기업은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주식연계채권(EB, CB, BW), 기업어음(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주로 채무상환, 운영자금 확보, 시설투자 등을 위해 사용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채무상환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차환용 회사채 발행 비중이 3년 전 53%에서 75%까지 늘어날 동안 시설투자용 회사채 발행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7%로 줄어들었다. 운영자금 목적으로 발행한 회사채 비중도 이 기간 27.7%에서 17.6%로 줄었다.
시설투자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놓고도 절반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들은 지난 해 시설투자 목적으로 회사채, 주가연계증권, 유상증자 등을 통해 약 7조7000억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이중 실제 사용된 자금은 3조4000억원으로, 사용률은 44%에 그쳤다. 지난 해 시설투자용으로 조달한 자금 8조9000억원 중 97%를 사용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 의원은 “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소극적 투자는 성장동력 상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재무구조 개선도 의미가 있겠지만 빚 내서 빚 갚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피해는 투자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채 순발행 규모가 급감한 것도 기업들이 기존 부채를 줄여나가는 데 주력한 탓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3분기까지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7365억원에 그쳤는데, 지난 해 같은 시기 5조3084억원 순발행한 것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빚을 더 늘리지 않고, 있는 빚을 갚는데 집중했다는 뜻이다.
금리가 하락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회사채 순발행을 늘리지 않는 경향도 한몫했다.
다만 과거 초저금리 시기에 발행한 회사채를 차환하는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KB금융은 지난달 31일 총 4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중 1700억원을 차환에 활용할 계획이다.
2019년, 2020년에 조달한 기존 채무 이자율은 1.7%대지만 차환에 쓰일 이번 회사채 이자율은 3.280~3.304%로 결정됐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레벨이 과거에 비해 높아져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투자 목적으로 자금 조달을 하기 보다는 돌아오는 만기를 차환하는 수준의 발행이 많았다”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들이 성장보다는 현상 유지를 우선시한 경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해외 투자를 위한 KP물(달러표시 한국기업 채권) 순발행은 4년 연속 증가세다. 올해 들어서만 188억달러를 기록해 지난 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해외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칩스법·CHIPS) 등을 시행해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를 장려하고 있는 영향이 가장 크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의 규모와 투자 대상을 확대했다.
오는 2030년까지 총 약 450억달러(약 62조3000억원)을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38억7000만달러(약 5조3000억원)를 투입해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운용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직접 투자를 늘리면서 현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하는 추세”라며 “외화표시 채권인 KP물의 이자비용은 법인세 계산시 과세소득에서 차감돼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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