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협조 당부”한다면서 시정연설 불참한 윤 대통령
윤 “2년 반 동안 맘 편한 적 없어”…친윤계서도 “아쉽다” 평가
총리 입 빌려 ‘예산안 조속 확정’ 협조 요청…진정성에 의구심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은 11년 만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4대(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독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문을 통해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라며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번영을 계속 이어가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사회의 구조개혁”이라면서 개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9월 정부 차원의 단일한 연금개혁안을 제시했다”며 “정부안은 논의의 시작이자 기준점이다. 국회 논의 구조가 조속히 마련돼 빠른 시일 내 사회적 대합의가 이뤄지고 법제화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면서 “정부와 국회,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일치된 노력을 펼쳐야만 인구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인구전략기획부가 신속히 출범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2025년도 정부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올해보다 3.2% 증가한 677조원이라며 “맞춤형 약자복지 확충, 경제활력 확산,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안전한 사회와 글로벌 중추 외교 등 4대 분야를 중점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 도입과 소상공인 지원 확대, K방산 수출펀드 조성, 출산휴가 확대 등을 언급했다.
그는 “최근의 국제안보 상황과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군사 공조는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점검해서 철저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 국민 여러분께서 안심하시도록 더욱 튼튼하고 강력하게 안보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면서 “대내외 위기에 맞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민생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2년 반을 쉴 틈 없이 달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은 민생 지원을 최우선에 두고 미래 도약을 위한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에 중점을 두어 편성했다”며 “내년 예산이 적기에 집행돼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을 확정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으로 ‘마이웨이’ 기조를 재확인했다. 지지율 하락, 김건희 여사 논란, 자신의 공천개입 의혹 등 부정적 이슈가 이어지고 있지만, ‘불편한 자리에는 가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참석할 수 없는 이유로 최소한의 예우가 없는 야당 의원들을 들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 가면 소리를 지르고 팻말을 들고 시위할 것이 예상되는데 굳이 정쟁의 장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국회가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쟁만 일삼는다는 대통령실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은 국회의 협조를 얻어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모순된 행동이다. 예산안을 법정 시한 내 확정해달라고 했지만 시정연설 불참으로 협조 요청의 진정성은 의심받게 됐다.
국회 무시 기조가 이미지로 고착화된다는 점도 윤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4월 총선 압승으로 민의를 얻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계속해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야당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은 국회를 찾는 일정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직접 하지 않은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만 직접 연설을 했고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년 시정연설을 했다. 임기 초 “의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며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2일 제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윤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편한 장소는 못 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국회에 와서 돌을 맞으면 지지율이 오히려 오를 텐데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며 “아직은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의미”라고도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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