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금투세 폐지론' 탑승 후폭풍…"尹정부와 다를 바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내년 1월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데 대해, 민주당 안팎에서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뒤에서는 동조해왔던 민주당이 이제는 앞에서도 정부·여당과 다를 바 없다", "자산 세제는 무력화하면서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 같은 '이재명표 예산'을 어떻게 실현시키겠다는 것인가" 등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내에서도 금투세 시행을 지지했던 의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의원은 <프레시안>에 "금투세 폐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듬해 시행을 전제로 한 절충형 금투세 보완 법안을 발의하는 등 기재부와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 대표는 아무 예고 없이 기존 논의되던 유예안이 아닌 금투세 '폐지' 의견을 밝혔다. (☞관련기사 : 이재명 "정부·여당 금투세 폐지 동의하기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과세 기본 원칙에 따라 여야 합의로 금투세가 제정됐지만,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금투세 전면 폐지'를 주장했고, 이날 이 대표도 결국 정부·여당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한 것이다.
다른 민주당 의원도 "금투세를 폐지한다고 해서 자본시장의 '밸류업'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시행되면 증시가 30~40% 떨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지배 구조를 바꾸는 것이 '밸류업'의 핵심적 내용인데, 이제 민주당이 상법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할 때"라고 했다.
금투세 시행을 지지했던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2025년 예산안 심사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저로서는 지도부의 결심을 받아들이기 참 어렵다만, 당론을 결정하고자 하는 절차가 있어 왔고 그 절차대로 지도부가 결단한 만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흔쾌하지 않은 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 의장은 "지도부가 얘기한 것처럼 금투세 시행이 맞지만 현재 주식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시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며 "향후 우리 주식시장이 정상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입법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주식시장이 그렇게 정상화되면 다시 금투세를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고 보고 그런 시기가 하루빨리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비단 금투세뿐 아니라 상속세 등 윤석열 정부 들어 자산 관련된 과세 규제를 전부 풀어주고 있어 우려가 된다"며 "정부·여당은 감세를 추진하면서 정부지출을 줄여 각자도생하는 전략이라면, 우리는 민생회복지원금 등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하는데 '금투세 폐지'를 하게 되면 앞뒤가 안맞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중도층은 바보가 아니다. 민주당에서 이 대표가 정부의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 감세를 주장하면 이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지적대로 이 대표는 대표적인 재정확대론자로,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1인당 25~35만 원씩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투세 반대' 등 정부의 초(超)부자 감세 정책 기조에 동참하면서,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국혁신당,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다른 야당과 민주노총·참여연대·민변 등 시민·사회단체의 비판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와 정춘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대표의 대표 철학인 기본소득 정책은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며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이냐"며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때 제1야당 대표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세금 깎아주는 일에 동참하면 민생은 누가 지키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주당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불합리한 세제를 그대로 둔 채 자본이득에 눈감아주는 그런 세상이냐"며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로 세수 경보가 울리고 증권거래세도 폐지되는 마당에 금투세까지 폐지하겠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원외 진보정당 정의당도 입장문을 내고 "결국 민주당 정부가 직접 발의하고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을 민주당이 폐지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에 협력한 것으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와 ‘원칙과 가치’로부터 생명력을 얻는 정치 신뢰도 함께 폐지됐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민주노총·민변은 이날 오후 공동성명을 내고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관련한 민주당의 갈팡질팡 행보는 결국 부자감세 동조로 귀결되고 말았다"며 "그동안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뒤에서는 동조해왔던 민주당이 이제는 앞에서도 정부·여당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하겠다면, 민주당이 3차 부자감세를 저지하고 목 놓아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뢰도 강령도 정체성을 훼손한 채, 결국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들고 나온 이재명 대표를 규탄한다"며 "자산 세제는 무력화하면서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이재명표 예산'을 어떻게 실현시키겠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대표의 금투세 폐지 입장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24년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에도 배치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3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상속세 완화 등이 담긴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소득, 상속자산에 대한 세부담 감소는 그 혜택이 고소득·고자산가에 상대적으로 크게 귀착되므로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정처는 특히 "(금투세 폐지를 담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자본시장에 대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고려한 것이나 정책 일관성 저하 등의 부작용을 감안, 증권거래세 및 대주주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선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책 일관성, 신뢰 저하 등 부작용의 가능성"을 지적헀다.
예정처는 또 "조세정책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 또는 유예가 현행 금융세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닐 수 있다"며 "소액주주 상장주식 양도차익 등에 대한 과세 공백 및 금융상품 유형 간 과세상 차별 등 현 세제에 내포된 결함이 상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국내 주식시장의 투자 매력도 제고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세제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 주도주 다각화 등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 제고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예정처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전제로 인하되고 있는 증권거래세율 및 현행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대주주 범위 등과 관련한 법안을 포괄해 금융세제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예정처와 시민단체의 지적처럼, 금투세와 같은 금융소득에 대한 세 부담 감소는 상대적으로 '고소득·고자산가'에 귀착된다. 금투세는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얻는 수익에 매기는 세금으로,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의 경우 손익을 통산해 연 5000만 원을 초과한 금액에만 세금 등에만 부과될 예정이었다. 1년에 5000만 원의 수익을 내려면 보통 5억 원 안팎을 현금으로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1400만 주식투자자 가운데 금투세 부과 대상은 1%가량인 15만 명에 불과하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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