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년 만의 ‘대독 시정연설’ 한국 정치 현주소다

2024. 11. 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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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독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체제'에서 대통령이 '정쟁을 우려해' 시정연설과 개원식에 모두 불참한 사례는 드물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총리가 대신 읽은 시정연설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군사 공조는 안보에 큰 위협" "고물가·고금리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민생에 타격을 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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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대신 한 총리 출석… 울림없어
“돌 맞아도 가겠다”던 결기 어디 갔나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독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시작된 시정연설은 내년 예산안을 국민에게 보고하고 여야 이해를 구하는 소통과 협치 공간이다. 행정부 수반의 가장 큰 책무가 안정적인 예산 확보와 효율적 집행이라는 점에서 시정연설 대독은 납득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국회 무시’는 지난 9월 국회 개원식 불참에 이어 올해 두 번째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체제’에서 대통령이 ‘정쟁을 우려해’ 시정연설과 개원식에 모두 불참한 사례는 드물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총리가 대신 읽은 시정연설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군사 공조는 안보에 큰 위협” “고물가·고금리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민생에 타격을 줬다”고 진단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그 복합위기 해결의 첫 걸음은 협치다. 정부가 검토 중인 우크라이나 파병 또는 무기 제공은 국회 동의가 필수다. 4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의료)과 노동약자보호법·공정채용법 입법 역시 야당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 국정 지지율이 19%로 떨어진 대통령이라면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거나 연립정부 수준의 ‘권력 분점’을 제안해 민심을 수습하는 게 순서다. 야당의 김건희·명태균 리스크 쟁점화가 ‘국회 거부’의 명분이 될 수 없다. 그럴수록 국회를 더 찾아야 했다. “돌 맞아도 갈 길은 가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 아닌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내용은 여당에서조차 ‘울림’이 없다. 오히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전면적인 국정 쇄신을 촉구했다.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국민 반감이 커졌다”면서 내각·대통령실 참모진 교체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한 것이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직접 비판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윤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 씨의 통화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선 “국민께 법리를 앞세울 때가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명의 통화는) 정치적·법적·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던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말을 반박한 셈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의 사과 또는 ‘입장’ 표명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집에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는데 일주일 뒤에 물 갖고 오겠다”(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는 안일한 현실 인식이나 다름 없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자평했다. 고물가·고금리와 내수부진에 시름하던 국민은 윤 대통령 부부 때문에 참담함까지 느꼈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국격을 훼손했다. 공천 개입 의혹으로 여당은 쑥대밭이다. 준비 안된 의료개혁은 국민 생명을 위협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민심을 다독이지 못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이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 대표조차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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