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실패를 날개 삼아, 죽도 프로젝트
새벽 다섯 시. YB의 노래 ‘나는 나비’가 연수원 구석구석에 울려 퍼진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운동장, 연두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산을 오른다. 남도의 가을, 새벽바람이 아직 달다.
바다가 보이는 평평한 언덕. 구령에 맞추어 절이 시작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탓입니다.” 백 번을 이어간다. 절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는다. 이내 온몸에 땀이 맺힌다. 단순한 절 동작이 아니다.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 챙김의 시간이다.
백 번의 절이 끝나면 섬 둘레길을 걷는다. 인근 장사도 섬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절벽. 이름하여 ‘명상 바위’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다. 파도 소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 이윽고 저 멀리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래, 오늘도 해가 뜬다. 산을 내려와 아침 일곱 시 반. 연수원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다. 하루를 시작하는 건강한 밥상이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여 달려가면 작은 섬 죽도(竹島)가 나온다. 이곳엔 실패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위한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연수원이 있다. 핸드폰 금지, 술과 담배 금지, 잠은 지급된 1인 텐트에서 자는 특별한 교육 연수. 그 중심에 MS그룹 전원태 회장이 있다.
전원태 회장은 스물넷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10년은 먹고살려고, 그다음 10년은 번듯한 기업을 만들려고, 또 다음 10년은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일했다. 수차례 부도 위기를 겪었다. 생의 끝자락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 돈과 성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실패 또한 중요한 배움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전 회장은 말한다. “어디로 갈 낀가가 젤로 중요하다.” 목적지를 모르는 길을 열정을 다해 헤쳐나갈 수 없다. ‘어디로’를 찾으면 ‘어떻게’는 이내 풀린다. ‘지금 여기’도 강조한다. “‘꽃 피는 봄이나 낙엽 지는 가을에 보자’ 카모 기다릴 수나 있지, ‘다음에 보자’ 그라모 마 파이다.” 맞다, 다음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일이다.
“옛날 김정호 선생은 짚신 신고 전국 산을 다 돌아댕��는데, 지금은 세상이 얼마나 좋노? 맘만 묵으모 몬할 일이 없다.” 전 회장의 철학이다. 그는 역설한다. 조건을 탓하지 말라고.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쓰러진 나무도 뿌리가 남았다면 다시 싹을 틔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전 회장은 본인의 삶으로 이를 증명했다.
팔순이 코 앞임에도 전 회장은 새벽마다 교육생들과 산을 오른다. 삽을 들어 땅을 파고,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팬다. 연수원 누구보다도 많이 일한다. 솔선수범. 그의 철학은 말을 넘어 행동으로 전달된다. 장자가 말하는 ‘불언지교(不言之敎)’. 말을 넘어 몸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돈이든 지식이든 나누어야 삶의 의미가 있다’ 말하는 전 회장의 화두는 ‘베푸는 삶’이다. 사재를 털어 재단을 만들고, 폐교를 매입해 연수원을 꾸몄다. 2011년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설립 인가를 받았으니 벌써 근 15년 세월이다. 원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4주간의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와의 협업으로 소상공인까지로 교육 대상을 넓혔다. 재도전을 위해 2주간 진행되는 교육은 전 과정이 무료다.
아, 전원태 회장과의 인연? 모 최고경영자 과정에 강의를 갔을 때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꼼꼼히 필기를 하며 강의를 들으셨다. 전 회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어 MS그룹 특강도 진행하며 소소한 인연이 이어졌다. 뵐수록 큰 분이셨다. 그릇이 크니 울림도 클 수밖에. 강의 요청을 받고 불원천리 죽도를 찾은 이유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 앞길도 보이지 않아 /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 살이 터져 허물벗어 / 한번 두번 다시 /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 (이하 중략) /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 날개를 활짝 펴고 /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나는 나비’의 노래 가사다. 그러고 보니 매일 새벽 연수원에서 이 노래를 틀어주는 이유가 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애벌레’나 ‘상처 많은 번데기’로 들어와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나가는 섬. 여기 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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