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팩트의 힘은 과학이다
힘(Force·力)이라는 용어를 쉽게 풀이한다면 무언가를 ‘제어하고 지배함’을 의미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개념이다.
물리학에서는 ‘운동을 일으키는 에너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두 물체나 한 물체와 주위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말하는데,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원인이다. 역학적으로는 중력 전기력 자기력 마찰력 등이 존재한다. 물리학자들은 이 네 종류 기본 힘에 의해 자연현상이 지배된다고 본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힘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사용 목적과 의도에 따라 제각각의 숨은 뜻이 있다. 단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남다른 파워를 발휘한다. 국제관계에서 힘은 각 나라 사이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강대국이나 약소국, 선진국이나 후진국 등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힘 있는 나라’와 ‘힘없는 나라’로 분류하면 그 나라 현주소가 딱 와 닿는다.
정치나 사회학에서는 ‘사회 구성원들 간에 작용하는 권력’을 힘이라고 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조직 내 권력이 서열화되어 있다.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버지 권력이 대접받아 왔지만, 어머니와 자녀들의 힘이 더 강해지는 현실이다. 정치권력과 공권력을 비롯해 법적·행정력은 물론 돈의 힘, 정보의 힘, 선동의 힘 등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인류사회는 부당한 힘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극심한 고통과 경제·사회적인 대가도 뒤따랐다. 공적이고 정당한 권력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악의 세력’이 활개 치는 세상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2017년)과 ‘힘쎈여자 강남순’(2013년)은 선천적으로 괴력을 타고난 여자들이 마약범죄 등을 통쾌하게 제압하는 내용이다. ‘힘쎈여자‘ 시리즈가 종편 방송물로는 드물게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끈 이유는 명확하다. 공권력에서 손을 못 쓰는(아니면 ‘안 쓰는’) 악의 세력을 또 다른 힘으로 물리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줄거리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누린 것이다. 현실은 딴판이지만 전설이나 소설, 드라마나 영화 등 상상 속에서나마 악의 세력이 정의로운 힘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상을 대중은 갈망한다.
이른바 ‘가짜 뉴스’나 검증되지 않은 선동성 이슈가 힘을 발휘하면서 우리 사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정치권이나 특정 단체 등이 사실을 왜곡·축소한 선동성 이슈에 대중은 쉽게 넘어간다.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정치 양극화와 진영 논리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우리나라에서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사람이 많아진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가짜 뉴스나 선동성 이슈는 한동안 기승을 부리다 사실 관계를 명쾌하게 진단하는 팩트(Fact)의 힘에 밀리기 마련이다. 팩트의 힘이 작용하기까지는 대중 설득이나 과학적인 검증 등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진영별로 쪼개지고 정치 사회 경제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유·무형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원자력발전소(원전)는 가짜 뉴스나 선동성 이슈의 단골 메뉴다. 기후위기 등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원전 가동의 불가피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안전성 논란과 공포감을 조장하는 이슈가 팩트에 밀릴 때까지 괴력을 보일 때가 적지 않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영구정지)가 준공된 대한민국 원전 발상지 부산 기장군 일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원전 밀집지역이다. 부산 울산 경남 전력소비량의 약 34%를 생산하는 고리원전에는 노후 원자로가 3기나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슈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정치권이나 특정 세력이 때가 되면 휘발성 강한 원전 이슈를 던지는 것은 당장 막을 방도가 없다. 사실 관계의 ‘맞고 틀림’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하는 국민의 과학적 사고능력을 높여 그 폐단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선동과 가짜 뉴스보다 강한 팩트의 힘은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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